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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예수님께 '개' 취급 당한 가나안 여인

Gospel Barista 2021. 7. 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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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상대하시고,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가셨다. 참고로 이곳은 마태복음 11장에서 심판의 강도를 비교하기위한 곳으로 등장한 곳이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 : 21~24]


두로와 시돈의 비교 뒤에 나온 도시는 소돔이다. 즉, 두로와 시돈은 소돔 급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도시인 것이다.

이 곳에서 어느 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자신의 딸이 귀신들렸다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절규에 가깝게 소리질렀다. 참고로 가나안 민족은 함의 자손으로 노아에게 저주받은 민족이다.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세기 9 : 25]


이 여인이 계속 시끄럽게 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 여자를 보내달라고 건의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태복음 15 : 24]


즉, 저주받은 가나안 민족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가 예수님께 절하며 간구하니, 예수님께서는 가히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5 : 26]


즉, "너는 떡을 먹을 자격이 없는 개야!" 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지혜롭게 대처한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태복음 15 :27]


이 고백에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이 크다며, 그녀의 소원대로 그 딸을 치유해주셨다.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이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이 민족만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 : 3]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창세기 12장 3절 말씀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에도 유효한 말씀이고, 이 말씀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 가운데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시는 것을 통해서 모든 민족, 즉, 우리들까지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이 실감이 되지는 않는다. "저게 나랑 뭔 상관이여?" 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이 가나안 여인의 짧은 대화에 주목해야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나안 여인을 '개' 취급 하셨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방사람 및 저주받은 민족을 지옥 뗄감 정도로 생각했기에, '개' 정도면 굉장히 품격있는 취급을 해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는 개다. 누군가에게 개 취급 당하면 당연히 기분 나쁘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방여인을 개 취급 하실 때 마음이 어떠셨을까? 신령과 진정으로 개같은 여인이라고 생각하셨을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 : 4]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임을 고려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개같은 가나안 여인도 구원 받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대우를 하셨다면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사명이 깨져버린다. 이 모순과도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방법론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이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끄시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모든 민족이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진리를 알게되어 복을 받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도 그러기에 이스라엘 집에 집중하신 것이다. 즉, 이 여인에게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시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진리를 알게 하려고 하셨다. 그러기에 이방여인에 대한 선을 '개' 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신 것이다.

이 여인은 이미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치료하시고 살리신 소문을 무성히 들었을 것이다. 즉, 예수님에 대해서 소문을 듣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자신의 딸을 살릴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목숨걸고 달려든 것이다. 면전에서 예수님께 개취급을 당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에 굴하지 않고 더 간절히 매달린다.

"이스라엘 집 기준에서 저는 개가 맞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주인 집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우선, 이 여인은 자신이 개같은 존재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있다. 이 고백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도 하지 않는 고백이다. 이 사건 직전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따지는 모습을 보라. 이 모습이 진정 개다.

대한민국 사람은 욕단의 후손이라는 썰도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이방인이다. 즉, 개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기분 나쁜가? 우리 중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죄인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살고있는 동네에 교도소를 짓겠다고 하면 집값 떨어진다고 난리가 난다. 죄인들을 개보다도 못한 쓰레기 취급을 하는 상황이다. 이런 우리도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는 개쓰레기만도 못한 죄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 대부분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예수님과의 동행이 시작된다.

이 개들은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이는 "가나의 혼인잔치-언약" 영화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삶 자체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이 삶 자체가 바로 꿀과 송이꿀보다도 달달한 떡인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9 : 9~10]


우리 이방인들의 문화는 이스라엘 민족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죽은자에게 절을하고, 다양한 이방신을 섬기며, 기독교인들을 핍박한다. 하지만 이런 개같은 우리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꿀과 송이꿀 보다 더 단 떡의 부스러기를 먹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되심을 알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믿게 된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밥상에는 삶의 문화, 자신들의 역사, 수많은 유적지, 그들의 말씀(토라) 등 수많은 떡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먹어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즉, 누가 주인인지를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전해진 것은 성경밖에 없다. 하지만 이 성경만으로도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개' 같은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는 어마어마한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존재에서 주인과 함께 밥상에 앉아서 겸상하게되는 존재로 되는 것이다.

이 개같은 가나안 여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고백을 통해 믿음을 보셨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고백을 삶으로 나타내보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거룩하게 깨어 기다리며...

개 취급당한 여인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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