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도 '길' 에 대한 말씀이 명확하게 명기되어 있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So be careful to do
what the LORD your God has commanded you;
do not turn aside to the right or to the left.
Walk in all the way
that the LORD your God has commanded you,
so that you may live and prosper
and prolong your days
in the land that you will possess.
[신명기 5 : 32~33]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끝까지 그 길을 가라(Walk in all the way) 라고 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생명의 길이라는 것이다. 즉, 생명의 길은 협착한 길이지만, 마귀는 이 길에서 치우치게, 다시 말해, 벗어나게(Turn aside) 하려고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유혹에 이겨내는 비법은 무엇일까? 잠언 말씀에 정답이 있다.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잠언 2 : 20]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잠언 10 : 17]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
[잠언 15 : 24]
정답은 바로 '여호와의 훈계와 지혜' 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 : 7]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한다.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롭고 훈계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지혜가 우리를 선한 자의 길과 의인의 길로 인도하며, 위로 향한 생명길로 이끈다. 우리가 잠시 잘못 발을 디딜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훈계를 지키면 생명길로 나아갈 수 있다. 이 모든 지혜와 훈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 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우리를 이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자. 찾는 이들이 적다 할지라도 이것이 생명의 길 임을 잊지 말고,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그렇다면 왜 이렇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것일까?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이들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는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넓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는 결국 '죄' 때문이다. 죄 가운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을 수 밖에 없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를 통해 죄가 들어왔고, 기하급수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지키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문은 좁을 수 밖에 없다. 죄악 가득한 세상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는 길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길 같지도 않은 길인 것이다. 그러기에 찾는 이가 적은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이 생명의 길이고 생명의 문이라면 기꺼이 기 길로 가서 생명의 문을 두드려야하지 않겠는가?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우리는 교회의 문턱을 낮춘다. 성도가 되는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기보다는, 일단 성도로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다보면 다들 성화되어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결국 성도의 수를 늘리기 위함이다. 물론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에 더 많은 이들이 한 번 이라도 더 복음을 듣게하기 위해서 교회의 문턱을 낮추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성경은 명확하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 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적인 애통하는 마음으로 교회가 스스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고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라는 고백의 믿음의 반석위에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되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 : 15~18]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즉, 성도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을 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로마서 14장 7~8절 말씀과 같이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우리 중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 : 7~8]
예수님께서는 이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 자가 적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단순하게 숫자 늘리기가 전도의 열매라고 착각하며 교회를 멸망의 문으로 만들지 말고, 올바른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을 정확히 묵상하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올바른 교회를 세워나가자.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하고 착잡하기만 한 좁은 길과 좁은 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택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는 우리의 중심에는 시온의 대로가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로 인한 복을 누리며 기쁨으로 기꺼이 좁은 길과 좁은 문을 향해 전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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