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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복음 다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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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바울서신 44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 사도권 변호

이번 묵상은 전도서 1장 9절의 말씀을 통해 고린도후서 11장과 12장을 바라보고자 한다.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전도서 1 : 9]'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이 진리의 말씀대로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 이 시대에 만연해있는 문제점들 또한 역사적으로 새로운 문제점들은 거의 없다. 동성애? 소돔과 고모라 시기에도 문제가 됐었다. 어떤 한 역사학자가 문명의 쇠퇴과정을 책으로 저술했는데, 대부분의 문명은 동일한 과정을 겪으며 무너졌다고 한다. 지역이 어디인지, 언어가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대부분 문명의 부흥기에 접어들면서 근친상간을 허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성애가 만연해지게 되고, 더 큰 자극을 위해 수간으로까지 이어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연보 사역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고린도후서 9 : 1] 이 말씀에서 ‘성도를 섬기는 일’ 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즉, 구제 헌금 사역을 뜻한다. 바울은 AD 49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회의로부터 AD 57년 봄에 바울이 그동안 모았던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할 때까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사역을 이어나갔다. 이 사역의 기록은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연보 사역을 이어나갔을까? 이 바울의 연보 사역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다양한 서적과 논문을 통해 수많은 신학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이슈가 많은 내용이지만, 현..

훈훈한 삼각관계

고리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을 위해 기록한 편지이다. 이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가 근심을 했으나, 이 근심이 회개로 이어지며 회복을 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7 : 8~9] 바울이 마게도냐에 있을 때 디도가 바울에게 와서 고린도교회가 회복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

기독교인 핍박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고린도후서 6장에 바울이 자신이 받은 핍박을 나열하고 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린도후서 6 : 4~5] 많이 견뎌야하고, 환난과 궁핍, 그리고 고난이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매맞고, 갇혀있고, 난동을 겪어야하는 상황 가운데 수고로운 일을 기꺼이 해야하며, 잠을 자지 못하고 굶어야 했다고 한다. 이 핍박들은 거의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나 겪을만한 일들이다. 괜히 전세계 기독교 핍박국가 1위가 아닌가보다. 성경에 나와있는 기독교인 핍박의 방식대로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있으니 성경적(?) 이라고 해야하는지 고민이 된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이 핍박들을 견뎌냈을까? 깨끗함..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로맨틱한 러브레터가 생각나나요? 수많은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이 자신의 SNS에 게시하는 대국민 사과문도 편지의 일종이지요. 우리가 읽고있는 고린도전, 후서 또한 편지입니다. 이렇듯 '편지' 는 생각보다 다양한 부문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우리의 편지' 이자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수많은 설교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설교 뿐만 아니라, 각종 시상식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소감이 선포되고, 정치인의 발언 및 법원 판결문에서도 성경 구절이 인용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인들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성경을 인용하면 기독교인으로써 호감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린도후서 2 : 17]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고린도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있었나보다.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그 시대적 분위..

'I am what I am' vs 'I am who I am'

영어 문법시간을 되새겨보자. 영어 문법책 어딘가에 '관계대명사' 내용이 있을 것이다. 선행사가 사물이면 which, 사람이면 who 를 쓰도록 되어있다. 선행사가 없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what 을 쓰라고 배운다. 이 관점으로 제목의 2가지 표현을 살펴보자. I am what I am 에서 what 은 선행사가 없는 관계대명사이다. 그렇다면 I am who I am 은 어떨까? 일단, 여기서 Who 는 의문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관계대명사일 것 같은데 선행사가 없다. 이녀석의 정체는 무엇일까? 각종 사전과 검색엔진을 돌려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선행사가 없어도 Identity, relation, social position 을 나타낼 경우 who 를 쓰는 것을 관용어구로 허용할 수 있다."..

교회의 덕을 세우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다양한 지적과 요구를 한다. 그 중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선포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He who speaks in a tongue edifies himself, but he who prophesies edifies the church. [고린도전서 14 : 4] '방언' 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 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모두가 방언을 넘어서 예언하기를 소망하라고 권면한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 : 5] 우선, '덕을 세운..

당신의 머리는 누구입니까?

머리는 우리 신체에서 제일 중요한 부위 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머리' 라고 하면 그 만큼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면서, 그 누군가 위에 앉아 군림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의 시선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린도전서 11 : 3] 이 말씀을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여자의 머리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남자이고, 이 남자의 머리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이고, 이 그리스도의 머리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인 것이다. 하나님은 폭군 중에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기에 세상은 이 구조를 뒤집고 싶어한다. 하나님..

이기기를 다투는 자의 훈련방법

스포츠 경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최근에 치뤄진 카타르 월드컵을 보라. 전 세계 사람들이 경기 결과에 따라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카타르 월드컵의 공식 경기영상을 사용하려면 1초에 2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중요한 장면들은 계속해서 방송에 나온다. 그 때의 감격스러운 장면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이런 감격스러운 장면들은 결국 세계적인 운동선수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바울이 이런 운동선수들의 모습을 통해서 고린도교회에 선포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 메시지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

신분제도를 무너뜨린 비법

각 나라별로 역사를 살펴보면 신분제도가 없던 나라가 거의 없다. 인도만 봐도 아직 카스트제도가 남아있어서 명확하게 신분이 나뉘어져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들에서도 명확하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져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신분제도를 어떻게 봐라봐야할까? 바울의 선포를 통해 이를 고찰해보고자 한다.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린도전서 7 : 22~23]종인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자유인인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공교롭게 더 큰 자유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고 한다. 즉, 자유를 누리지 못하던 ..

군대 내 성인지 교육 의무화 법안

고린도전서 5~6장에는 수많은 음란의 죄악이 펼쳐진다. 안타까운것은 이 말씀들의 죄악들이 바울이 머리속으로 상상해낸 변태적인 음란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 고린도교회에서 벌어지고있던 음란의 죄악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있는 죄악이라는 것이 억장이 무너질 따름이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형제끼리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서로 고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형제' 는 '하나님 뜻대로 하는 자' 를 의미한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 : 50]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하나님 뜻대로 한다는 자들이 서로 세상에 고발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즉,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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