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된 이후, '아사' 가 남유다의 3번째 왕으로 통치하게 된다. (르호보암-아비얌-아사) 이 아사왕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사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The Spirit of God came upon Azariah son of Oded.
He went out to meet Asa and said to him,
"Listen to me, Asa and all Judah and Benjamin.
The LORD is with you when you are with him.
If you seek him, he will be found by you,
but if you forsake him, he will forsake you.
[역대하 15 : 1~2]
아사랴는 아사왕과 유다, 베냐민 지파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 말씀은 바로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이다. 얼핏 보면 이 말씀은 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해야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고, 하나님이란 존재는 이들이 굳이 찾아야지만 만날 수 있는 존재라는 조건부 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는데, 이런 조건부 사랑의 하나님이실까?
영어 성경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첫 번째 내용은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이다. 이 말씀이 조건부가 되려면 영어성경은 이렇게 쓰여져야 한다.
"If you are with The LORD, he will be with you."
하지만, 영어성경은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The LORD is with you when you are with him."
즉, 이는 조건부가 아닌, 타이밍에 대한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해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때가 바로 그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고 "아하. 그렇구나" 정도로 느끼고 넘어가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예를 통해 이 말씀을 묵상해보자.
현재 대한민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부모들이 육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초중고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하루 빨리 애들을 학교로 보내고 싶어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 수도 있는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를 원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과 항상 함께있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절대로 조건부의 사랑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할 준비를 언제든지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때 만을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하는 사랑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말씀은 "The LORD is with you" 로 문장이 시작된다. 영어는 중요한 내용이 앞에오는데, 이 문장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더 나아가 Whenever 가 아닌 When 이 관계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때 마다' 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할 때' 라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때 마다(Whenever)' 가 맞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When' 으로 말씀하셨을까? 이는 한 번 하나님과 동행하면 이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의 개념은 잠시 동행했다가 다시 잠시 멈추고, 얼마 후 다시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한 번 시작되면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개념인 것이다. 이 좋은 예가 에녹이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창세기 5 : 21~23]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했다 안 했다 반복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과의 '동행' 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동행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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