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당원은 흔히 로마시대 때, 이스라엘의 독립운동가로 정의 한다. 다만, 조금 더 정확하게 이들의 정체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하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자 목적이었던 자들이다. 다만, 특이한것은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살인도 서스름 없이 했고, 항상 자신의 품속에 칼을 갖고 다녔다. 이는 어떤 순간이라도 죽여야 하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죽이기 위함이었다. 즉,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이스라엘' 이라는 국가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도 열심당원이었고, 예수님 대신 풀려난 바라바도 열심당원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로마 입장에서는 제일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을 잔인한 십자가형으로 죽임으로 열심당원들의 의지를 꺾으려고 했던 것 이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 열심당원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했던 안중근과 같은 이들이 열심당원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의 앞잡이 세리였던 마태와 열심당원 이었던 시몬의 관계는 어땠을까?
마태는 열심당원 입장에서는 암살 1순위였을 것이고, 열심당원 시몬은 당연히 품에 칼을 갖고 다녔을 것이다. 시몬은 예수님의 시각을 살피며, 빈틈을 노리고 있었을까? 실제로 시몬이 마태를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을까?
성경에는 시몬이 열심당원이었다는 내용만 언급되어 있고, 오히려 "시몬은 칼을 품에 갖고 마태를 노리더라", "시몬은 항상 마태를 째려보더라" 라는 말씀은 없다. 왜 그럴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의 공통점이 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의 고백이다.
죄인이 의로우신 예수님 앞에서 또 다른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이를 죽일 수 있었을까?
두번 째 공통점은 바로 관점이 바뀐다는 것이다.
어부가 사도로, 세리가 사도로, 열심당원이 사도로 바뀐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12사도로 임명된 것이다. 이들이 아직도 어부, 세리, 열심당원으로 살아가려고 했을까? 아니면 사도로 살아가려고 했을까? 물론, 가룟 유다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기준삼아 살아가던 이도 있었지만, 나머지 사도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괜히 '거듭나라' 라고 하셨겠는가?
물론, 시몬도 처음에는 마태를 죽이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쫓는 삶이 열심당원의 삶 보다 더 우선이 되었기에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시몬이 언제까지 마태를 째려봤는지는 천국가서 물어보자.
이런 상극의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쫓을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공교롭게도 '예수 그리스도' 이다. 예수님으로 인해 이 두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오히려 이 둘을 통해,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 역으로 증명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대한민국의 기독교계도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성경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하는데, 각자의 소견대로 행하고 있다. 이 산산조각난 교회들과 이 나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임을 명심하자.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고, 올바른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목적지가 같아야 합력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합력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쫓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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