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무엘하 6장으로 돌아오자.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사무엘하 6 : 13]
레위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여섯 걸음을 걸었을 때, 다윗은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다. 역대상의 말씀을 보면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린 것을 알 수 있다. 사무엘하 6장 13절 말씀과 역대상 15장 26절 말씀을 종합해보면, 여호와의 궤를 멘 자들이 여섯 걸음을 걸은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궤를 멘 레위사람을 도우셨음을 깨달았고, 이로인해 이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첫 번째로 여호와의 궤를 옮길 때,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아 웃사의 몸이 찢겨지면서 죽었다. 두 번째로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이 시점에 '제 2의 웃사' 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까 조마조마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떼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이들이 여섯 걸음을 걸은 것을 보고,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궤를 멘 자들을 도우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섯 걸음이었을까? 이 정답은 역대상 15장 25절에 있다.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역대상 15 : 25]
사무엘하 6장에서의 여섯걸음은 역대항 15장 25절에서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온 순간인 것이다. 즉, 여호와의 궤가 그동안 머물러있던 오벧에돔의 집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깨닫고 제사를 드리며 본격적인 여호와의 궤 운반에 들어간 것이다.
사무엘하 6장에서는 '다윗' 이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역대상 15장 26절 말씀에 이 제사를 드린 주체가 '다윗' 으로 표현되지 않고 '무리' 라고 표현되어 있다. 사무엘하는 다윗의 심정에 주목한 반면, 역대하 15장에서는 어느 한 사람만 제사를 드리기를 원한것이 아니라 이 상황 가운데 속해있는 모든 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무엘하 6장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여기서의 제물은 '소' 와 '살진 송아지' 로 제사를 드렸다. '소' 는 제사를 드릴 때 드리는 제물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살진 송아지' 를 왜 부연설명을 하고 있을까? '살진 송아지' 가 신약에 1군데 등장한다. 이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기뻐서 잔치를 베풀 때 등장하는 진치 음식이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누가복음 15 : 23]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누가복음 15 : 27]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누가복음 15 : 30]
즉, 살진 송아지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의 아버지의 기쁜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여기서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탕자는 죄인이었던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가 하나님께로 나아왔을 때의 하나님의 기쁨의 표현이 바로 '살진 송아지' 인 것이다.
첫 번째 여호와의 궤를 운반할 때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다윗이, 두 번째 여호와의 궤를 이동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였다. 즉,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다윗이 하나님 말씀대로 준행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다. 이 때의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매우 기뻤을 것이다. 다윗이 '살진 송아지' 로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온 순간인 것이다. 사무엘하 6장 말씀은 철저하게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다음으로 역대상 15장의 말씀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수송아지 일곱마리와 숫양 일곱마리로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레위기 1 : 2]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는 '소' 나 '양' 으로 드리라고 레위기의 시작부분에 명기되어 있다. 즉, 역대상 15장에서의 포커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 예물의 목적은 노하시지 않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이전의 잘못된 방식으로 여호와의 궤를 옮긴 죄에 대한 속죄를 위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왜 일곱마리씩 드렸을까? 성경에 소와 양을 일곱마리씩 드려야하는 제사는 없다. 다만,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예물이지 않을까 싶다. '7'은 완전수 이다. '7' 이 완전수인 이유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인 '3' 이 동서남북을 의미하고, 이 땅을 의미하는 '4' 에 더해졌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7' 이 완전수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알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이 상황에 맞는 예물을 마을 다해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사무엘하 6 : 14]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그런데 성경은 굳이 다윗의 옷을 뜬금없이 명기하였다. 이는 무엇때문일까?
다윗이 입은 '베 에봇' 은 아론에게 입으라고하신 대제사장들이 입었던 옷이다. 즉, 다윗이 대제사장의 옷을 입은 것이다.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면해야한다.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된다. 이런 대제사장의 옷을 다윗이 입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기 이전에 매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되는 자로 살아가겠다는 굳은 결단의 모습인 것이다.
이런 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는 것은, 주변의 노래나 음악에 취해 춤을 춘 것이 아니다. 여호외의 궤가 돌아오는 이 순간의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이 기쁨은 단순히 하나님이 내 편 되어주신다는 왜곡된 기쁨이 아니다. 다윗이 다시 하나님 편에 섰고, 여호와께서 다윗을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만으로 밀려오는 참된 기쁨의 표현인 것이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사무엘하 6 : 15]
이는 다윗 혼자만의 기쁨이 아닌 온 이스라엘 민족의 기쁨이었다. 모든 이들이 즐거이 환호하며, 여호와의 임재와 권위의 상징인 나팔을 불며 여호와의 궤를 메고 다윗 성(예루살렘) 으로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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