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이 죽은 후,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 라는 자가 있었다. 미가의 어머니가 은 천백을 잃어버렸는데, 그것이 알고보니 미가에게 있었다. 이에, 미가가 그것을 어머니께 드렸더니,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새기며, 신상을 부어 만들었다.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사사기 17:4]
미가에게 신당이 있어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으로 삼았다. 에봇은 제사장들이 직무를 수행할 때 입었던 의복이며,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우상이다.
미가는 자신의 신당에 이렇게 우상을 만들고, 일단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 감당해야하는데, 신당에 형식상 제사장이 있어야겠기에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17 : 5~6]
이 가운데 유다에 사는 레위인 한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아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사사기 17 : 7~8]
미가는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 삼은 것이 마음에 걸렸었나보다. 이 레위인에게 자신을 위하여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한다.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사사기 17 : 10~11]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겠다는 제안에 이 레위인은 만족하게 생각하며 그 집으로 들어갔다.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사사기 17 : 12~13]
미가는 이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제사장 삼았다. 이렇게 레위인을 제사장 삼은 궁극적인 이유가 사사기 17장 13절 말씀에 나온다.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마음은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 자가 우상숭배 하면서, 레위인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미가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미가의 어머니가 신상을 부어 만든 이유는 아들인 미가를 위한 것이다.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사사기 17 : 3]
하지만 출애굽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애굽기 20 : 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라고 명확히 그 중심을 지적하신다. 미가를 위하여 만든 신상 그 자체가 질투의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한 가증한 짓이다. 거기에 드라빔을 만들어 신당에서 우상숭배하고, 레위지파 제사장을 세웠다고 하나님께 복달라는 것이다.
이 미가의 모습과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이 대한민국 땅에 공동묘지처럼 수많은 십자가가 널리 퍼져있다. 1000만 기독교인이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 기독교인들이 한 짓들을 보면, 일제시대때 신사참배를 하고, 오히려 신사참배 확산운동을 주도했다. 교회에 들어온 헌금으로 무기를 사서 일본군에게 전달했으며, 일본군 군수비용으로 교회의 헌금을 심었다. 끝까지 신사참배하지 않고 고문당하고 견디는 자들을 향해서는 이단취급하고 교회에서 쫓아냈다. 6.25 이후에는 수많은 이단들이 판을 쳤고, WCC에 동참하고, 카톨릭과 연합하는 등 하나님을 배도하기 바쁘다. 거기에 종북짓까지 더해져, 오직 예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에 입각한 공산주의에 빠져 스스로 미혹케 하는 영이 되어가고 있다. 이가운데 교회라는 건물을 세우고 거기에 십자가만 달아놓고 예배드린다는 명목하에 1시간만 앉아있으면, 하나님께서 복주실거라는 기대감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삶의 모습은 미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니,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교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레위인 청년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예배자의 삶을 살고 있을까?
우선, 이 레위인은 미가가 제시한 조건에 만족하여 미가의 집에 제사장으로 자리잡았다. 이 가운데 이스라엘 지파 중 '단 지파' 가 거주할 기업의 땅을 찾고 있었다. 이 무리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사사기 18 : 17~18]
이들이 미가의 집에서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가져갔다. 이에 레위 제사장이 그들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사사기 18 : 19]
이 제안에 제사장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사사기 18 : 20]
한 사람의 제사장이 아닌,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 자리를 제의받자,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갔다.
이런 레위 청년의 모습은 흡사, 대한민국의 목사들의 모습과 같다. 우상숭배하는 신당이라도 조건만 만족스러우면 기쁘게 제사장 직분을 감당한 레위인의 모습과, WCC 를 앞장서서 외치는 교회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좋다고 기뻐 날뛰면서 목회하러 들어가는 목사들의 모습은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제사장이 아닌, 한 지파의 제사장 자리를 제의받자, 이전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바로 그 지파로 들어가는 레위 제사장과, 작은교회에서 목회하다가 큰 교회의 제의를 받고 기뻐하며 더 큰 규모에 눈이 먼 목사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하나님께 묻는자는 단 한 사람도 없고, 일반인들부터 제사장들까지 모두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시대가 사사시대 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사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더 소름돋는 것은, 단 지파의 제사장들의 정체이다,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사사기 18 : 30]
단 지파도 자기들을 위하여 신상을 세웠으며, 그 제사장은 모세의 손자이며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분명 단 지파의 제사장은 미가의 집에서 데리고 나온 자인데, 이 레위 청년의 정체는 모세의 손자이자,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이라는 것이다. 이 자손들이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던 모세의 손자도, 이렇게 타락의 끝을 달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 합당하고, 돈과 명예를 좇아 살아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돈과 명예를 좇는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의 행적과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유명한 목사님 또는 그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여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의 선봉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사사기의 마지막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 : 25]
소름돋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 교회와 이 사사시대의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대로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리게 할 수는 없다. 현 시점부터는 내거 먼저 돌이키고, 내가 먼저 회개하고, 내가 먼저 깨어나고, 내가 먼저 나팔불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부르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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