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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도행전

대제사장이 사도들의 입을 틀어막은 이유

Gospel Barista 2021. 12. 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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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이 베드로 등 사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 했다. 그 궁극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자신들에게 돌리려고 하는 줄 알고 있는 것이다.

사도들의 입을 막은 대제사장 (※출처 : Pixabay)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사도행전 5 : 28]


하지만,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5 : 31~32]


'회개함' 과 '죄 사함' 을 주시기 위함이다. 즉, 이들을 구원하기 위함인 것이다. 사도들은 이 일의 증인으로써 위증하지 않기 위해 대제사장이 입을 틀어막아도 입을 열며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억지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십자가형이 집행되도록 여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과정중에서 자신들에게 왕은 로마황제 밖에 없다는 우상숭배의 말을 서스럼없이 내뱉기도 했다. 이런 자의 눈에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위해 여론을 만들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론몰이 눈에는 여론몰이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대제사장과 사도의 대결구도로 볼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대결구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도는 오늘 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 정권은 여론몰이로 불법탄핵을 통해 세워진 정권이다(불법탄핵 시 내세웠던 증거들이 거짓임이 만 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이런 정권의 가장 큰 적은 교회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1000만 기독교인이 하나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거짓을 통해 세워진 정권은 몰락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교회 때려잡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차별금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코로나 시국을 핑계삼아 교회를 차별하며 종교행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다.

탄압받는 교회 (※출처 : Pixabay)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베드로와 사도들의 행동을 살펴보자.

성령충만해야하는 자들 중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어서의 '거짓' 에 대한 대가를 뼈저리게 알게했다. 그리고 말씀을 계속해서 선포하고, 더 나아가 스데반과 같은 안수집사를 세워나갔다. 이렇게 세워진 스데반은 사도들 못지 않게 영적 파워를 가지고 어마무시한 전투력을 쏟아낸다. 이것이 세상의 핍박 가운데 이를 이기고 퍼져나가는 교회의 모습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교회는 어떠한가? 통제에 순응하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이들을 단상에 세우며 회개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런 시국에 목사들은 뭐하고 있냐며 욕하고 있는 목사보다 100배 이상 많은 안수집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은 스데반이 대제사장이었다고 착각하고 있나보다.

이런 사태가 왜 벌어질까? 우선은 교회가 말씀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죄에 대한 분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하는 것은 100만 유튜버라는 명성이 아닌 '거룩' 이다. 이를 위해서는 죄를 분별해야 한다. 그러니 '회개' 라는 그럴싸한 주제로 주목을 받으나, 실상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사직분의 남발이다. 성경에 명확히 집사의 기준이 명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디모데전서 3 : 8~13]


교회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야한다며 집사직분을 남발하며 집사놀이를 하도록 만들었다.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은 집사였다. 스데반이 순교하기 직전에 선포한 설교를 보라. 이것이 집사의 수준이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모습대로 이 시기를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자. 세상의 핍박이란 핍박을 정통으로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이 핍박을 어떻게 여겼을까?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행전 5 : 41]


이것이 항상 기뻐하는 자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항상 기뻐하자 (※출처 : Pixabay)


자신이 세상의 핍박을 받는 것이 믿음안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무조건적인 잣대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믿음안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이들은 마귀의 간섭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간섭은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이 꿈꿔온 것이 선악과의 모습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올 수도 있다. 이에 무너지지말고 사도들과 같이 오히려 이런 마귀의 간섭을 승리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로 여기며 기쁘게 이겨나가자. 이것이 이 시대를 거룩하게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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