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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바울서신

로마 성도를 향한 바울의 마음. 그렇다면 우리는?

Gospel Barista 2022. 2. 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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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로마서 1장을 통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 마음을 잠시 살펴보자.

우선, 로마의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을 기도하고 있다.

바울의 로마 성도를 향한 마음 (※출처 : Pixabay)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 : 7]


그리고 바울은 로마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서 1 : 8]


왜 로마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이야기거리가 되고, 이를 바울이 감사하는 것일까?

로마서는 일반적으로 AD 57년 말에서 AD 58년 초 사이에 기록된 편지로 알려져있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우상숭배하는 나라였다. 더 나아가 황제가 스스로 신이 되어 신이 다스리는 나라를 표방하고 있었다. 황제가 죽은 뒤에 신으로 칭송받기도 하고, 황제 즉위기간 중에 신으로 칭송받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우상들과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으려는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기독교인으로써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쉬울 것 같은가? 로마서가 쓰여진 기간의 황제는 기독교인 박해로 유명한 '네로' 였다. 로마 대 화재가 AD 64년 7/19 에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로마에서 잔인하게 박해했다.

로마 대 화재 (※출처 : Pixabay)


"로마서가 쓰여진 시기는 로마 대 화재로 인한 박해 때 보다 7~8년 전이니 아무상관 없네?"

라고 생각하는가? 기독교인을 향한 적대적인 분위기는 로마 대 화재 직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며 수많은 우상을 신으로 여기고 황제마저 신으로 즉위하는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으로 여기고 목숨걸고 전도하고 다닌다. 이 모습은 로마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인 것이다. 거기에 황제는 자신의 친모까지 암살한 미치광이 네로 황제이다. 로마의 성도들이 감당했을 시선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로마에서 기독교인으로써 목숨걸고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이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으니, 바울 입장에서는 이를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는가?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로마서 1 : 9]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바울의 증인이 되신다고 선포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증인' 이라고 하면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말씀을 떠올리며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울의 증인이 되어주신다고 뜬금없이 증인소환을 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평소에 로마의 성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음을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어주신다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인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받으시는 하나님이지 않겠는가?

간절한 기도 (※출처 : Pixabay)


만약에 로마서 1장 9절이 "내가 밤낮으로 당신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네" 라고 되어있었으면, 이 편지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저 형식적으로 기도했나보네. 그러니 내가 로마에서 핍박을 받고 눈치보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 아닌, 로마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진심어린 마음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대한 증인이 되어주신다는 표현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바울은 이런 로마의 성도들을 향한 마음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가지 않고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로마서 1 : 10]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로마서 1 : 13]


바울은 로마로 직접 가고 싶으나 현재로써는 길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로 갈 수 있는 좋은 길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로마의 성도들 입장에서는 이 편지를 읽고, 바울이 로마로 올 수 있는 좋은 길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이어서 로마의 성도들을 찾아가려는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로마서 1 : 11~12]


목숨걸고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로마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하고, 이를 통해 함께 안위함을 얻으려는 것이다.

'은혜를 함께 나누며 서로의 믿음을 견고히 하고, 세상과 맞써 함께 싸울 영적 군대가 형성되는 모습을 통해 서로 안위함을 얻는 것'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즉, 바울은 이방인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도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서로 헐뜯으며,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고 '비판하지 말라' 는 말씀을 들먹이며 오히려 지적한 것을 비판하고 있는 모순에 빠져있는 것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날의 교회들은 서로 공격하며 온갖 음해와 거짓, 그리고 당파를 만들어 선동질을 하며 자신들끼리 싸우기 바쁘다. 그러니 공중권세 잡은 이가 이처럼 편하게 이 땅에서 사역을 차근차근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바울의 로마 성도들을 향한 마음이다. 이를 간략히 정리해보자.

1.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도
2. 이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
3. 쉬지않고 이들을 위해 항상 기도
4. 현재는 이들에게 나아갈 길이 막혔으나, 좋은 길을 구하고 있음
5. 이들의 신앙을 견고히 하며, 서로 안위함을 얻고자 함


자. 이 위의 5가지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라. 대한민국 땅에서 살고있는 우리가 바울이 로마 성도들을 품은 것 같이 품어야 할 대상이 생각나는가?

바로
'북한 지하교회 성도분들' 이다.

북한 (※출처 : Pixabay)


우리는 이들에게 갈 수 있는 길이 현재 막혀있다. 하지만 '복음 통일' 이라는 좋은 길을 간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북한 정권에서 주는 배급을 바라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맛보기늘 기도하고 있다. 로마에는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다면, 북한은 3대째 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가 통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분들의 신앙생활 이야기나 순교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며 우리의 믿음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게된다. 즉, 이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퍼짐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일 이후에 이들과 함께 신앙을 견고히 하며, 서로 안위함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분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을까? 지금도 목숨걸고 성경의 한 구절을 마음속에 새기며 하루하루 힘든 생활을 하고있을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분들이 우리 눈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증인이 되어주신다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을까?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가사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뒤덮히는 한반도를 기대해야하지 않겠는가?

이 로마서 1장에서 '로마' 라는 단어를 '북한' 으로 치환하여 다시 한 번 읽어보라. 바울의 로마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우리의 북한 지하교회 성도분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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