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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바울서신

차별금지법의 원조

Gospel Barista 2022. 2. 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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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차별금지법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어떤 교회들은 차별금지법 입법을 막으려고 하고, 정신나간 교회들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며 민주당이나 정의당 국회의원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아부를 떨고 있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교회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일까?

차별금지법이 아름다워 보이는가? (※출처 : Pixabay)



기본적으로 차별금지법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 즉, 동성애는 죄라고 선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발효되면 목사들이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하는 순간 위법자가 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또 다른 예로는, 한 사람의 성 정체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고 우기는 사람에게는 남성으로써 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해놓고 각각 그들에게 누가 남성을 하고, 누가 여성을 할 것인지를 물어보셔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창조한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반 성경적 세상을 만들기 위한 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차별금지법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이 사회에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성 평등을 자연스럽게 외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젠더 갈등을 기반으로 성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 (※출처 : Pixabay)


이를 전 세계적으로 공식화 한 것이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UN 세계 여성대회' 이다. 여기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의 주요 의제로 채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성 인지 예산' 을 편성하도록 했고, 대한민국도 2008년에 성 인지 예산안 작성 지침을 발표하고 2010년에 도입했다. 2020년 기준 성 인지 예산이 약 30조원을 넘어섰다. 당시 국방비가 약 50조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이 차별금지법을 입법시키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뿌려졌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예산이 다 악한것에 쓰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예산의 배경과 목적 차원으로 바라본다면, 사회에 미친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예산이 반영된 시점의 대통령은 보수당에서 세워진 장로였던 이명박 대통령이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마귀는 이렇게 야금야금 탄탄하게 자신만의 진지, 즉, 반 성경적 세력을 구축해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독교계는 유럽의 기독교가 이런 '성 주류화' 전략으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비판만 했지,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하지도 않았다. 이미 사회적으로 교회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꼴통 집단으로 전락했고, 정치적으로도 좌익 야당이 이미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입법도 막을 수 없다. 기껏해야 입법예고시스템 싸이트에 가서 반대를 누르는 정도의 싸움 밖에는 실질적으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가운데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바울이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나가야 할까? 이 전쟁은 진리와 비진리의 격돌이니,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법 체계를 보면 뼈대를 구성하는 헌법을 기반으로 각종 민법, 행정법, 의료법 등이 쌓아올려진다. 우리도 말씀을 통해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차별' 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 : 22]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차별이 없느니라' 라고 명확하게 선포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이 옳다는 것인가? 바울이었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가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대한 부연설명이 바로 이어진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 : 23~26]


즉,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며, 이 구원에 있어서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차별이 없는 세상의 원조인 것이다.

구원 (※출처 : Pixabay)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 에 대한 차별은 두시지 않았지만, 하늘나라 상급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차이를 두셨다. 이는 차별이 아닌 행한대로 갚으시고, 뿌린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이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4 : 11]


착각하지 말자.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아서 믿음이 좋아진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무할례시의 믿음으로 할례를 받았다. 우리도 이 땅에서의 삶으로 하늘나라의 상급을 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 상급을 선금으로 지불해주셨기 때문에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차별이 없는 것을 '평등' 이라고 포장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평등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것들이 있고, 각자 다르게 주시는 것들이 있다. '열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를 보라. 각 사람에게 '므나' 를 동일하게 주셨고, 그에 대한 대가는 차이가 있게 주셨다. 즉,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주신 것에 대한 것은 행한대로 갚으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달란트' 비유는 처음부터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다르게 줬으나, 그 칭찬은 동일했다. 이것이 성경적인 평등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고, 그 대가도 동일해야 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즉,
조건과 결과의 동일성이 평등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평등? (※출처 : Pixabay)


모든 사람은 공평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죄의 무게에 짓눌리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기쁨의 하늘나라 상급을 정산받게 될 것이다. 이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의대로 공의롭게 살아낸 자들은 특혜를 받는 격이다. 이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공평하게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는데, 이를 취하지 않는 것은 평등을 가장한 무식한 선택이다.

이 하나님의 공평의 관점으로 이 땅에 적용해보면, 우리가 주장해야하는 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적용되는 법의 기준' 이 되어야 한다. 각 사람의 삶의 조건과 결과의 평등은 수용소에서나 가능한 불가능한 영역임을 인지하고, 행한대로 갚으시고 뿌린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공평의 기준을 각자의 삶에 적용되도록 목소리를 내야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이미 상황은 급진적으로 교회에 불리하게 기울었다. 즉, 이미 우리 목에 칼날의 끝이 닿아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상황 가운데 우리가 아무 해함도 없이 살아날 각오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면 가능하겠지만, 하나님께서 괜히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라고 하셨겠는가? 우리는 이미 칼날이 목에 들어온 이상 죽을각오하고 우리만의 진지를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각 교회들은 세상이 말하는 평등의 미혹에서 벗어나 올바른 하나님의 공평을 선포하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며 성경적 진리가 이 사회의 기반이 되도록 선한 싸움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을 쌓아올리는 방법임을 잊지 말자. 정부가 무상으로 배급해주는 이 땅의 재물에 눈이 돌아가서 정부의 개가 되지 말고, 우리의 눈을 하늘나라 상급으로 돌리자.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누가복음 12 : 34]


당신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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