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 특별히 만드신 곳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 : 8]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이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결국 이 특별한 곳은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로 보호받는 텅 빈 곳이 되어버렸다. 참고로, 그룹은 지성소의 휘장에 그려져 있는 천사이다. 즉, 지극히 거룩한 곳을 지키며, 죄인이 지성소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갔을 때 이를 처단하는 역할을 하는 천사인 것이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 : 24]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 정말 보시기에 좋았던 아담과 하와를 위해 특별히 만든 에덴동산에서 이들을 쫓아낼 때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그리고, 이들이 선악과를 먹은 죄인인 상태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봐 이를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로 강력하게 막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에덴동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아담과 하와의 죄악으로 인해, 결국 이 에덴동산은 텅 빈 곳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각종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며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느끼는 장소가, 창세 전의 모습과 같은 공허한 곳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죄’ 의 영향력이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 앞에서 다양한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했으면 한다. 단순히 우리 자신의 이력서에 빨간 줄 하나 그어지는 것이 아닌, 창조주께서 질서있게 채우신 곳을 다시 공허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죄’ 의 영향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 옷’을 입혀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 : 21]
이는 ‘죄’ 의 문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짐승의 희생,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한 ‘수치심’ 가득한 아담과 하와를 향해, 죄의 수치심을 가려주며 이 땅에서 하루하루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우리를 ‘벌거벗은 죄인’ 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의인’ 으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는 이 은혜의 ‘가죽 옷’을 하나님께서 입혀주셨다는 인식조차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 마저도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은혜의 가죽 옷을 벗어던지고, 뱀이 하와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은 것처럼, 수많은 뱀들의 유혹에 형형색색 화려한 옷들로 자신들을 치장하기 바쁘다. 더 나아가 수치심을 자신감으로 둔갑하며 자신들이 걸치고 있던 옷 마저도 벗어던지며 음란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야 하겠는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 : 7]
이 말씀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선포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이 마지막 때를 살아내는 비법인 것이다. 죄는 우리를 원하고 또 원한다. 마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죄로 넘어지고 깊은 흑암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죄를 다스리며 매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은혜의 가죽 옷을 붙들고 은혜의 길로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물론, 가인은 아벨을 죽이며 죄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우리는 죄의 영향력 즉, 텅 빈 에덴동산을 생각하며 죄를 다스리며 나아갔으면 한다.
지금 현재 하나님께서 만드신 곳 중 아직 채워지지 않은 텅 빈 공간이 있다. 바로 진정한 에덴동산인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 곳은 휴거된 교회들 즉, 우리들이 거할 곳이 될 것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로 인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특별한 에덴동산이 텅 비게 되었다. 마지막 때를 살아내는 우리를 통해 텅 비어 있는 진정한 에덴동산이 채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죄를 다스리며 마지막 때에 휴거될 수 있도록 매 순간순간을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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