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은 야곱의 족보를 17세 청소년 시절의 요셉이야기로 시작한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창세기 37 : 2]
한국나이로 17세이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성경의 나이가 만으로 계산한다면, 만 17세이면 고등학교 2학년 정도이다. 이 나이의 청소년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요셉의 모습은 조금 의아하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이르거나, 2가지 꿈 이야기를 가족들을 불러모아놓고 이야기한다. 꿈의 내용도 17세 청소년의 꿈이라고 하기에는 5살 어린아이의 꿈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세기 37 : 7]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세기 37 : 9]
생각해보라. 대한민국 고1 또는 고2 남학생이 대학생 또는 직장다니는 형들의 잘못을 부모님에게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떨까?
"너는 형 잘못만 찾아내고 있니? 정신차려... 넌 이제 중학생 아니야. 고!등!학!생! 이라고!!! 니 형은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갔지... 에효... 너는 대학이라도 가겠니? 잔말말고 공부나 해!"
정도의 말이 튀어나가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요셉의 꿈을 부모님께 얘기했다고 생각해보라. 2가지 반응이 예상된다.
"와우. 우리아들이 세계정복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빠는 회사가서 아들이 세계정복 할거라고 자랑하고 다녀야겠네! 세계정복하려면 공부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꿈 꿀 시간에 공부나 하지? 너 숙제는 다 했니?"
"요즘 그런 꿈을 꿀 만큼 우리 아들이 스트레스가 많았구나? 오죽했으면 모든 너의 주변의 것들이 너에게 절을 할까... 그만큼 우리 아들이 무엇인가에 억눌려서 해방되고 싶은데 잘 안 되니, 이렇게 꿈에 반대로 나타났나보네... TV 에서 '5은0' 박사가 아이들의 꿈은 억압된 현실을 탈피하고싶은 욕망이 나타날 수도 있다던데... 우리아들 공부가 전부가 아니야! 스트레스 받지 말고 하고싶은걸 찾아보자!"
이와같이 아들이 개꿈을 꿨다고 생각하거나, 아들을 정신병자 취급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야곱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세기 37 : 11]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이야기를 듣고 시기했지만, 야곱은 요셉의 이야기를 간직했다. 야곱은 요셉의 이야기를 직감적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이라고 직감한 것이다. 그러기에 요셉의 말을 간직한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12살 유월절 때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혼자 남게되었을 때의 마리아의 모습과 흡사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누가복음 2 : 49]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누가복음 2 : 51]
예수님의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은 바로 '마음에 두니라' 였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떤 것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담아두고, 새기라고 할까?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3 : 3]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판에 새겨야한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정신병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헛소리 정도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야곱과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의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이끄시는 것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를 마음에 간직하고, 마음에 둔 것이다.
야곱의 족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렇게 야곱이 마음에 간직한 것을 굉장히 자세하게 다루면서 시작하고 있다. 이는 야곱의 족보에서 야곱의 마음속에 간직한 것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족보는 지금 시대의 이력서와도 같은 개념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성경은 이런 야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야곱이 마음속에 간직한 것을 제일 먼저 설명하고 있다.
이 관점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력서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는 어떤 내용을 제일 서두에 작성할 것인가? 다시 말해,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이 세상 기준으로는 정신병자의 헛소리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진화론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주장하면 '돌+I' 취급을 받는다. 지구의 기후와 자연들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것은 마지막 때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이야기를 하면,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환경파괴범으로 인식된다. 그러면서 소가 방귀를 많이 배출해서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된다며 소를 사육하는 농가들에게 세금을 물려야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자신들은 방귀도 뀌지 않나보다. 휴거나 7년 대환난을 이야기하면 SF 소설이나 믿는 오타쿠 정도로 생각하며 기피대상이 되기 쉽상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보다도 SF 스러운 외계인의 존재를 근거없이 받아들인다.
이것이 세상의 시선이다. 이런 시선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간직할 각오가 되어있는가?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펼쳐내실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지듯이 우리 마음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기자. 그리고 이를 간직하며 하루하루 승전보를 울리며 이미 깃발 들고 뛰시는 승리의 여호와 닛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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