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꾀로 인해 베냐민이 다시 붙잡힐 상황에 처했다. 유다는 이 상황이 그닥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베냐민을 꼭 같이 데리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창세기 43 : 8~9]
이 상황에서 유다는 결단을 하고, 감히 애굽의 총리 요셉에게 협상을 시도한다. 그 요지는 자신이 베냐민 대신에 애굽에 머무르며 종이 되어 그 죄 값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창세기 44 : 33]
죄 값을 치르며 애굽 총리의 종이 되어야 하는 동생을 대신해서 죄 값을 치뤄주며 동생을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보내려고한 유다의 모습에서 묘하게 오버랩 되는 분이 계시다. 바로 예수님이다. 죄의 종이 되어 하루하루 죄악 가운데 살아가야하는 우리를 대신해서 죄 값을 치뤄주셨다.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예수님이 왜 유다지파로 오셨을까?' 에 대한 질문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는 순간이다. 물론, 이 사건 하나만으로 하나님께서 '내 아들 예수를 유다지파로 보내기로 낙점했어!' 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미 태초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저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그저 감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베냐민 입장에서는 유다가 이정도 했으면 인생의 은인으로 모시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자.
우선, 이스라엘의 초대 왕 베냐민 지파 출신 사울왕과, 사울이 죽이려했던 유다 지파 다윗이다. 베냐민의 죄 값을 대신 치르려고 했던 유다였는데, 베냐민 지파 출신 사람이 유다 지파 출신 사람을 죽이고자 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뤄주셨는데,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서 우리의 죄 값을 다시 치뤄달라고 예수님을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하는 모습과 흡사하지 않는가?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망권세 다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우리가 대못들고 예수님 붙잡으러 다니는 듯한 모습으로 살지 말자.
그 다음으로 신약에서 베냐민 지파 사울과 유다 지파 예수님이다. 베냐민 지파 사울은 예수님을 핍박했던 장본인이다. 하지만, 역시 예수님께서는 왕 중의 왕이시다. 이런 '베냐민 지파 사울' 을 '사도 바울' 로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셨다. 죄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우리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관계는 참 묘하다. 베냐민을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희생했던 유다의 삶은 잊혀지고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유다 지파를 향한 칼날이 매섭게 휘몰아쳤지만,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뉠 때에는 남유다에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2개의 지파만 남아있었다. 베냐민을 향한 유다의 희생이 유다 지파의 근본으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다 지파의 대표적인 인물을 죽이려고 하고 핍박했던 베냐민 지파의 대표적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하지만 그 마무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유다의 모습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 되듯이, 우리의 삶의 모습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하게, 아니, 강하게 오버랩이 되는 삶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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