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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바울서신

어머니의 믿음 (BGM. 하기오스 - 가정의 기도)

Gospel Barista 2023. 8.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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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가정의 기도(하기오스)

 
디모데는 바울이 인정한 신앙인이다. 오죽하면 디모데를 향해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디모데전서 1장 2절)'이라고 표현했을까. 그렇다면 디모데는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그 정답은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명확하게 나와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 1 : 5]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 말씀을 읽고 "우리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이 로이스와 유니게 같지 않으니 내가 이 모양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였군..."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 구절을 곰곰이 살펴보라.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는가?

흔히 성경은 '남존여비'사상이 짙게 깔려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구약시대 때 중요한 족보는 대부분 남자들의 이름만이 거론된다. 이스라엘의 12지파 모두 남자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병이어 사건을 보라.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의 수만 명기되어 있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태복음 14 : 21]


이 기준으로 보면 디모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은 것으로 명기되어야 할 것 같은데, 성경은 명확하게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족보가 아닌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족보를 통한 믿음의 유산을 강조한 것일까?

어머니의 믿음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을 되짚어보자.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사도행전 1 : 15]


120명이 기도했고, 이들에게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다. 여기서 120명의 의미는 중요하다. 흔히 이스라엘에서 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구가 유대인 남자 120명이다. 120명에게 성령님께서 임했다는 것은 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에 성령님께서 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도 남자 120명이었을까?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 : 13~14]


남자와 여자 모두가 인원수에 포함되어 120명이 계수되었다. 즉, 기존의 공동체와는 다른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공동체 패러다임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남녀평등은 성령님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힌두교의 그늘 아래에 있는 인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들을 보라. 이슬람권 국가들의 여성인권을 보라. 성령님 없이는 남녀평등의 패러다임은 있을 수 없다.

성경은 절대 남존여비의 역사를 증명하는 책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남자들의 죄 값만 치러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싶어 하신다.

성경


디모데의 외할머니인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는 바울이 루스드라 지역을 전도여행을 할 때 전도된 것으로 여겨진다. 유니게의 남편은 유대인도 아닌 헬라인이었다. 바울이 만약에 남존여비 사상과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사상으로 물들어있었다면 이 여인들을 전도했을 것 같은가? 바울은 이런 세상적인 사상이 아닌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였기에 이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여인들의 믿음을 디모데가 그대로 본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디모데의 믿음은 바울에 의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왜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의 근원을 디모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를 통해 바울이 '믿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이 다닐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교'를 꼽는다. 즉, 목회자가 얼마나 올바른 설교를 선포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만약에 바울이 이 관점을 갖고 있었다면 디모데의 믿음의 근원은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닌 자신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생각하는 믿음은 무엇이길래 디모데의 믿음의 근원을 외할머니와 어머니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이 여인들은 바울이 선포한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따라 이 세상에서 치열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특히 디모데의 아버지는 디모데가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즉, 디모데의 어머니인 유니게는 이방땅에서 유대인 과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했겠는가? 이런 처절한 삶 가운데 자녀에게 신앙을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 것 같은가? 자녀와 주말마다 여유롭게 성경공부라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가?

디모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하루하루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런 전쟁과 같은 매 순간마다 믿음에 입각한 삶의 모습을 취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 디모데를 책임감을 갖고 신앙으로 양육했을 것이고,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며 복음전파에 힘썼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과부였기에 힘든 일이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을 했을 것이다.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바울은 믿음에 대해서 '얼마나 화려하고 멋진 복음을 들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얼마나 복음을 붙들고 복음대로의 삶을 살아내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기에 디모데의 믿음의 근원을 자신이 선포한 복음에 두지 않고,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치르며 하루하루를 복음에 기반한 신앙생활을 한 디모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로 여기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닌 실질적인 삶의 모습인 것이다. 어머니인 유니게의 이런 실질적인 믿음의 삶이 있었기에 참된 신앙인 디모데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정확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어머니의 믿음'이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여성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며 이 땅을 복음으로 개간했고, 자신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땅에 심겨졌다. 그 결과 한국은 20세기 기독교 성장률 1위 국가가 되었다. 영적인 어머니의 믿음을 이어받은 한국 교회가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이다.

1905년 2월 <The Korea Methodist>에 실린 만 7세 남자아이의 시를 보라.


영생의 의미는 영원히 사는 것
지금 영생을 얻기 위해 우리가해야할 것은?
만약 우리가 예수를 믿고 순종하고
그의 말씀을 전하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수있어요
이 민족 모두에게 자비,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이 민족을 깊은 잠에서 깨우기 위해
우리 모두 서두르고
일어나고
일으켜야 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우리모두 최대한의 간절한 열망으로
민족에게 예수를 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해요
우리 민족 모두가 우리처럼
이 축복을 누리기를 나는야 소망해요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선포된 만 7세 남자아이의 시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 성인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믿음의 시이다. 어떻게 만 7세 남자아이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선교사들의 철저한 신앙교육이 있었던 것이다. 로이스와 유니게의 믿음이 디모데에게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믿음의 꽃이 폈지만, 한국교회는 이 화려함에 취해 한 알의 밀알이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식물은 꽃이 피면 그 씨를 뿌리기 마련인데, 화려한 꽃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그 상태로 액화질소에 담겨 그대로 얼어붙은 향기도 나지 않는 꽃의 모양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어붙은 꽃


이제 다시 성령의 불로 얼음을 녹여내고 우리도 바울의 기준과 동일한 기준을 갖고 실질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휴거 되기 전까지 다음세대에게 훌륭한 믿음의 모습을 전해주는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복음의 꽃이 만개하는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약 120년 전 만 7세 남자아이의 믿음의 시 보다도 더 간절하고 멋진 믿음의 시가 꽃 피우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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