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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빌드업

Gospel Barista 2024. 2.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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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기대하는 모습들을 갖고 있다. 겸손한 모습, 친절한 모습,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모습들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 간의 므흣한 사랑이 아닌,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착한 사람의 모습을 기대한다. 교회 내에서도 사랑을 중요시하며 매사에 사랑을 녹여내려고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사랑스러운 눈빛과 친절한 말투로 사람들을 대하면 사랑을 실천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착한 사람?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5~7절에서 '사랑'에 대한 정확한 빌드업을 제시하고 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하는 말씀대로의 사랑을 쌓아 올리고자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add to your faith goodness;
and to goodness, knowledge;
and to knowledge, self-control; and to self-control, perseverance;
and to perseverance, godliness;
and 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love.
[베드로후서 1 : 5~7]


우선, 사랑의 시작점은 '믿음'이다. 이는 사랑의 대상을 신뢰하는 믿음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신앙(faith)'을 의미한다. 이 신앙이 기반이 되어야 하며, 이 기반 위에 다양한 것들을 쌓아 올리며 사랑을 위한 빌드업을 하라는 것이다.

쌓아올리다


이 믿음에 덕(Goodness), 다른 말로 선한 것을 더해야 한다. 단순한 착한 일이 아닌, 신앙이 기반이 된 선한 것을 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신앙이 기반이 된 선한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여기에 지식을 더하라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는 로봇처럼 행하는 것이 아닌, 어떤 것이 신앙이 기반이 된 선한 일인지 분별하며 행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 : 6]


더 나아가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이다. 지식은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고 잘 살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 망하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인자인 것이다.

지식


이렇게 신앙을 기반으로 한 선한 것 위에 지식을 더하게 되면 세상 것은 자연스럽게 절제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세상 것을 절제하게 되니 세상의 비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지 않겠는가?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베드로전서 4 : 4]


이것이 세상 것을 절제하는 크리스천을 향한 세상의 반응이다. 술 취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향한 핍박에 기독교인들이 주눅 들어서 세상의 회식문화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도, 전공을 살리지 않고 그저 세상사람들과 접하지 않는 곳을 향해 삶의 방향을 돌리는 사례도 많이 봤다. 세상의 빛이 되기보다, 자신의 빛이 세상에 새어나갈까 봐 근심과 걱정을 하며 자신을 이불로 꽁꽁 싸매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세상은 이런 나약한 크리스천들을 많이 접했다. 이제 핍박의 경로가 술에 그치지 않고 마약이나 더욱더 악한 것들로 다양화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악한 세상 것들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거룩한 용기를 겸비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두려움의 대상인 회식문화


이렇게 용기를 내어 세상의 악한 것들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버텨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다만, 이 인내의 과정은 이 악물고 악바리 정신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다. 인내 위에 더해야 하는 것이 바로 '경건'인 것이다. 경건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인내하며 세상의 악한 것들을 절제해야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경건하게 버티다 보면 나와 같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형제들, 다시 말해 동역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 : 50]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로 정의하셨다. 경건한 인내의 절제를 통해 함께 세상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이들에게 '형제', 즉 하나님 뜻대로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며, 이들에게 형제의 우애와 같은 '친절함(brotherly kindness)'을 베풀어야 한다.

친절함(Brotherly kindness)


이런 친절을 베푸는 삶 위에 결론적으로 '사랑'이 쌓아 올려져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반이 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모습이며, 베드로가 선포한 '사랑 빌드업'이자 신앙인으로서 사랑의 마음을 품는 과정이다. 이 과정 없이 그저 사랑 타령만 한다면, 가벼운 입김에도 쉽게 날아가버리는 민들레씨 보다도 가벼운 사랑이 난무하게 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Be self-controlled and alert.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베드로전서 5 : 8]


마귀는 단순히 삼킬 자를 찾는 것이 아니다. 영어 단어 Devour를 검색해 보라. 배고파서 걸신들린 듯이 먹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이다. 이렇게 삼킬 자를 으르렁 거리면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귀 앞에서는 민들레씨 보다도 가벼운 사랑은 그저 간식거리 밖에는 되지 않는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서 7절 말씀과 같이 '사랑'까지 더해진 단단한 '믿음'이 있어야 이런 굶주린 미친 사자에게 삼킴을 당하지 않고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믿음부터 빌드업 된 단단한 사랑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까지 쌓아 올려진 베드로이기에 죽음의 흑암이 자신을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도 믿는 이들, 다시 말해 형제들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올바른 신앙을 지키게 하기 위해 베드로후서를 썼다.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I think it is right to refresh your memory
as long as I live in the tent of this body,
because I know that I will soon put it aside,
as our Lord Jesus Christ has made clear to me.
And I will make every effort to see
that after my departure
you will always be able to remember
these things.
[베드로후서 1 : 13~15]


베드로후서 1장 13절의 한글말씀에 '장막'이라고 번역된 구절이 바로 'the tent of this body'이다. 이를 제대로 번역하면 '우리 몸의 장막'이다. 이런 베드로가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몸을 벗어날 것이 임박했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이런 죽음 직전의 순간에 신앙을 지키려는 성도들을 위해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의 참된 사랑이지 않겠는가?

우리 신앙과 사랑의 상태는 어떤가? 베드로가 제시하고 있는 '사랑 빌드업'과 비교해 봤을 때 믿음이 기반이 되어 올바르게 사랑까지 탄탄하게 쌓아 올린 상태일까? 이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굶주린 사자에 잡아먹히지 않고 대적하며 승전보를 울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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