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라는 말씀은 매우 유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루를 천 년같이 만드실 수도 있고, 천 년을 하루와 같이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시므로 시간의 통제를 받지 않으시는 '진정한 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구절로 인용되기도 한다. 과연 베드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시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 진정한 신'임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이를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But do not forget this one thing, dear friends:
With the Lord a day is like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re like a day.
[베드로후서 3 : 8]
이 말씀의 영어 구절을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친구들이여.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잊지 말아 주시오.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는 천 년과 같고, 천 년은 하루와 같소!
'하지만'의 뉘앙스를 알기 위해서는 베드로후서 3장 7절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 : 7]
이 말씀은 노아 시대 홍수사건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셨다는 내용이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유효하다. 아직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이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베드로후서가 쓰여진 시대와 동일하게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물론, 입으로는 '마라나타'를 외치지만, 실질적인 삶은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이 아닌 '먼 훗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세상에 취해 살아간다.
베드로후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자 곰팡이 같이 퍼지는 거짓 교사와 거짓 교훈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도 기미가 보이질 않자, 수많은 성도들의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베드로후서 2장을 통해 강력한 Wording으로 경고를 하고, 베드로후서 3장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베드로는 '친구'로 지칭하는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격려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셔서 경건하지 않은 이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이 세상이 보존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큼은 잊지 맙시다!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는 천 년과 같고, 천 년은 하루와 같습니다!
즉, 누군가에게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고, 재림의 순간이 도래하지 않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 여겨질 것이지만, 하루하루를 주님과 함께하는 성도들에게는 그 하루가 천 년과 같이 풍성하고, 천 년과 같이 느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하루와 같이 느껴질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다. 바로 '주님과 함께하는(With the Lord)' 이 구절이 핵심이다. 베드로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릴 때, 거짓 교사와 거짓 교훈이 아닌 주님과 함께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베드로의 권면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권면이다. 지금은 진정으로 마지막 때 중의 마지막 때 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한 가지가 바로 '주님과 함께 삶'임을 명심하고, 이를 실천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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