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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신명기

놓치기 쉬운 명령

Gospel Barista 2024. 12.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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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기도를 한다. 그중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구하는 기도이지 않을까? 물론,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 : 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 : 7]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라는 것이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해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고, "구하라"라는 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기도


이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신명기 말씀을 통해 이 점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신명기 2 : 4~5]


이 말씀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이다. 그저 정해진 목적지가 아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광야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북으로 가라(신명기 2 : 3)"라는 명령은 얼마나 반갑고 설레는 명령이었겠는가? 이렇게 자신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이 제시되었으니, "그 땅을 정복하라!"라는 멋진 명령을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북으로 가라"라는 방향성이 제시된 이후 첫 명령은 "세일땅은 한 발자국도 취하지 마! 너네한테 안 줄 거야!"라는 것이었다. 이 명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쩌라는거지?


우선, 세일땅은 동과 철의 주산지였고, 수리아와 메소보다미아, 아라비아와 애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진격하는 과정에 이런 땅을 통과해야 한다면 당연히 점령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얼마나 쉽게 점령할 수 있겠는가?

이런 땅을 그냥 지나치라고 하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격하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신 것으로 인해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는 이들에게 찬물을 확 끼얹은 꼴이다. 이 상황을 하나하나 상세히 살펴보자.

먼저, 이렇게 찬물을 끼얹은 타이밍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끼거나 알게 되면 기쁨이 충만해지기 마련이다. 흥분이 되기도 하고, 엄청난 기대감이 우리를 휘감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진격하는 목표지점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의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과 이에 대한 순종은 잊혀지기 쉽다.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에도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명령을 선포하신 것이다.

타이밍


다음으로 세일땅을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를 살펴보자. 그 이유는 명료하다. 세일땅은 에서에게 주신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은 이스라엘이다. 다시 말해 야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야곱의 쌍둥이 형이 에서이다. 세일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쌍둥이 형 민족에게 주신 기업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한 발자국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지 않으시겠다고 명확하게 인지를 시켜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네 삶에 비전을 보여주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실 때, 이 과정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역이 있고,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은 영역이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은 영역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탐이 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한 발자국도 허락하지 않은 영역이라면, 우리가 취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매우 쉬운 명령처럼 느껴진다. 이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세일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형제인 에서에게 주신 매력적인 땅이다. 즉,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에게 탄탄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돈이 없어서 밥 한 끼 제대로 먹기 힘든 이에게 돈을 잘 버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대출 빚에 허덕이는 이에게 로또 1등이 담청 된 형제나 자매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굉장히 질투가 나고 이들이 갖고 있는 것들이 탐나지 않겠는가? 이들과 "다투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다투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발자국도 허락하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는 탐내지도 말고, 이를 위해 다투지도 말고 우리 스스로 깊이 삼가야 한다. 이 놓치기 쉬운 명령을 잘 기억하고 우리 삶에 적용했으면 한다.

"하나님.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세요. 이 가운데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은 영역을 잘 분별해서 우리 스스로 깊이 삼가고, 이를 위해 다투지 않는 우리가 되게 해 주세요!"라는 멋진 기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 명령을 자신이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점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역을 점령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며 "이곳은 나에게 허락하신 영역이 아니야!"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잘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역이 아닌 곳에 머무르면서 으스대고 있지는 않는가? 역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곳을 향해 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게으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삶을 점검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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