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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신명기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

Gospel Barista 2024. 12.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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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필두로 38년째 광야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북으로 나아가라(신명기 2 : 3)"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러면서 모압과 암몬자손은 괴롭게 하지 말고 다투지도 말고 그냥 지나가라고 하셨다.

조용히 지나만 가겠소


그 후 다음과 같이 명령하신다.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신명기 2 : 24]

드디어 전투 명령이 하달된 것이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불순종의 죄를 범하여 40년의 광야생활이라는 대가를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는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하나님께서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라고 하셨으니, 광야생활의 기간을 더 이상 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 길가에 있는 돌이라도 주워 들고 진격해서 싸우려고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군대를 재정비하고 짧게라도 군사훈련을 시키지 않겠는가?

전투 준비!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모세의 리액션을 살펴보자.

내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르기를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너는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내가 먹게 하고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내가 마시게 하라
나는 걸어서 지날 뿐인즉
세일에 거주하는 에서 자손과
아르에 거주하는 모압 사람이
내게 행한 것 같이 하라
그리하면 내가 요단을 건너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 하였으나
[신명기 2 : 26~29]

모세는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땅을 통과하게 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 모습은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기준으로 보면 불순종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순종의 대가였던 40년 광야생활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지켜주고 인도해 주니 살만했던 것일까? 아니면 막상 전쟁을 치르려다 보니 두렵고 떨려서 화친조약이라도 맺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평화의 말'을 전하는 사자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순종의 대가는 단순한 40년 광야생활이 아니다. 출애굽 1세대가 모두 죽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나 마음 아픈 죄의 대가인가? 이 끔찍한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본 모세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두려움보다는 불순종으로 인한 추가적인 죄의 대가가 더 끔찍하지 않았겠는가? 이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모세는 단순한 '두려움'으로 인해 이를 회피하고자 사자를 통해 평화의 말을 보내어 시혼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굳이 사자를 보냈을까?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의 명령에 100% 순종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는 명령에 평화의 사자를 보내는 것이 어떻게 순종하는 것이냐?"

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싸우는 방법은 내가 먼저 때리는 방법이 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에게 먼저 공격을 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모세는 후자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화의 사자를 보내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먼저 공격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한 나라를 다른 나라 민족이 조용히 통과만 하겠다고 길을 열어달라고 한 사례를 생각해 보자. 떠오르는 사례가 있는가? 바로 이 땅에서 겪은 '임진왜란'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 당시 일본은 명나라와 외교를 하기 위해 조선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었다. 물론, 이 당시 일본의 조선을 향한 침략의도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조선은 내부적으로 일본의 침략의도를 간파하고 군사적 경계를 강화했었다.

이순신 장군


원래 한 나라를 다른 나라 민족이 조용히 통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소한 다툼이라도 발생하게 되고, 이는 큰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시혼이 모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그렇다면 모압과 암몬 자손들의 경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스라엘 민족이 그저 조용히 통과만 하지 않았는가? 모압과 암몬 자손은 에서와 롯의 자손들이었다. 에서는 이스라엘(야곱)의 쌍둥이 형이고, 롯은 아브라함이 아끼던 조카였다. 즉, 모압과 암몬 자손의 경우는 친인척 관계의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군사적 동맹관계 정도의 가까운 민족으로 여길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땅에 주한 미군이 주둔하듯이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모세는 시혼이 군대를 이끌고 먼저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시혼에게 사자를 보냈을 것이다. 실제로 시혼이 먼저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해 왔다.

시혼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신명기 2 : 32]

시혼의 선제공격


과연 모세는 어떻게 이런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을까? 이는 모세가 평소 광야 생활을 할 때 시혼에 대한 성향과 특징을 파악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모세는 시혼에 대한 특징만 파악하고 있었을까? 광야 생활 이후 하나님과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기 위해 주변 나라들의 특징을 살피지 않았겠는가?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정탐으로 인한 불순종을 동일하게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시혼 왕을 향한 공격 명령을 내리셨을 때 망설임 없이 사자를 보내며 시혼의 공격을 이끌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즉, 불순종의 죄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모세는 주변 민족들의 특징을 파악하며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어떤 전략으로 정복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광야생활의 힘듦과 우울함에 빠져서 슬픔에 잠긴 나날들을 보내는 것이 아닌,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멋진 '리더'의 모습인 것이다.

멋진 리더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리더가 있었다. 바로 6.25 전쟁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이다. 북한군에게 낙동강 이남 지역인 경남 지역까지 밀렸을 때,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고, 군인들을 끌어모아 하루하루 힘겹게 전선을 버텨냈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군인의 숫자가 단 1명이라도 아쉬운 시점에 대학생들을 군 면제 시켜주며 끊임없이 학업을 이어나가도록 했다. 당연히 반대여론이 형성되어 어마어마한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전쟁이 끝나고 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욕을 먹더라도 할 수 없다."며 버텨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전쟁 중에 인재를 구출한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한 세대를 구출한 것과 같다. 전쟁으로 20대 남성 대부분이 전사했다고 생각해 보라. 한 국가의 인구 중 한 세대가 텅 비게 되는 기형적인 인구분포를 갖게 될 것이고,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게 될 것이다.

전쟁 당시 야외 중학교에 적혀있던 글귀이다.

"이곳은 우리의 싸움터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고 우리나라를 자유롭게 하는 길을 배운다."

전시 상황에서 학교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 5,000년 문맹으로 살아온 백성들이 글자를 깨우치고 지식을 배워서 국민으로 거듭나는 전쟁터였던 것이다.

전쟁 중 학업을 유지하도록 결정한 멋진 리더


전시 상황에만 집중하여 젊은이들을 모두 전사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전쟁 이후를 바라보며 나라를 다시 세울 다음 세대를 준비시킨 리더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광야생활을 하면서 주변 민족의 특징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다음 명령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세와 같이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의 전략에 응답하시며 이스라엘 민족이 이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의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 하시더니
시혼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넘기시매
우리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쳤고
그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다만 그 가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넘겨주심으로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까지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점령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 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가기를 금하신 모든 곳은
네가 가까이하지 못하였느니라
[신명기 2 : 37]


이것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어떻게 공격할 거면서 평화의 말로 거짓말을 할 수가 있어?" 라며 비난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정복해야 하는 이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세상도 아니다. 특히 외교문제는 그 어느 문제보다도 복잡하고 표면과 이면의 차이가 엄청나게 큰 분야이다. 이에 크리스천 리더라면 이런 외교적 상황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전략과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


우리 가운데 앞이 보이지 않는 광야와 같은 곳을 지나가고 있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우울함에 파묻혀 있지 말고, 광야생활이 끝나고 난 후의 삶과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대하며 철저하게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멋진 삶을 살아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S
대한민국은 미국의 대선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함에 따라 협상의 대가를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외교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의 리더가 모세와 같이 지혜롭게 전략을 수립하여 대한민국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고 칭찬받는 나라로 잘 이끌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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