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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신명기

이스라엘 민족의 트라우마 극복기

Gospel Barista 2024. 12.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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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양한 '징크스'를 갖고 있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들은 '루틴'으로 자리 잡고 이를 삶의 습관으로 녹여낸다. 이는 운동선수들에게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손흥민이 축구장에 들어갈 때 왼발부터 내딛는 루틴과 같이 말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징크스'는 '트라우마'가 되어 인생의 발목을 붙잡곤 한다.

징크스


그렇다면 광야생활을 하던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트라우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광야생활을 하게 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민수기 14 : 34]

광야생활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하나님을 원망하며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의 대가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 보고는 이러했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민수기 13 : 27~28]

가나안 땅의 거주민은 심히 크고, 그 성읍은 견고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힘으로는 이들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가나안 땅으로 진격할 수 없었다. 즉, 38년째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심히 큰 거주민'과 '견고한 성읍'은 자신들이 극복해야 하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지 않았겠는가?

"저들은 매우 강합니다!!"


공교롭게 38년째 광야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 내용이 바로 신명기 3장에 펼쳐진다.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신명기 3 : 1]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북으로 진격하며 바산으로 올라갔고, 바산의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적하여 전쟁을 치르게 됐다. 여기서 '바산'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신명기 3 : 5]

과연 이 말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없을 수 있으니, 실제 이 지역의 고고학적으로 발군 된 유물들을 살펴보자. 이 지역의 성벽의 두께는 9m였고, 성문의 두께가 45cm였다고 한다. 이마저도 이중문으로 되어있어서 매우 견고한 성읍을 형성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리장성의 두께가 흔히 약 4~5m 수준이라고 한다. 바산의 성벽은 만리장성의 약 2배 수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성벽의 문이 두께 45cm의 이중문이었으니, 얼마나 견고 했겠는가? 이런 성읍이 최소 60군데 이상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매우 강건한 성읍


그렇다면 이 지역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아직도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니라)
[신명기 3 : 11]

흔히 규빗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사용되던 길이의 단위이다.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에 해당되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523.5mm, 고대 로마에서는 444.5mm,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500mm를 1규빗으로 여겼다. 계산하기 편하게 500mm를 1규빗이라고 치면 바산 왕인 옥의 침상은 길이가 9규빗, 너비가 4규빗이었다. 즉, 길이가 4.5m, 넓이가 2m였던 것이다. 아무리 왕의 침대라고 해도 이런 침대에서 잠을 잘 정도면 골리앗과 같은 거인족이 아니었겠는가?

우리에게 있어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을 향한 분노 유발 버튼이듯이, 거인족에 견고한 성읍은 광야생활을 유발한 정탐꾼의 보고내용을 상기시키는 버튼이었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의 바산 성읍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이스라엘 민족 입장에서는 광야생활을 하게 된 계기인 '트라우마'와 같은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 전쟁의 결과는 어땠을까?

우리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 성읍들을 멸망시키되
각 성읍의 남녀와 유아를 멸망시켰으나
다만 모든 가축과 그 성읍들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
[신명기 3 : 6~7]

우리가 빼앗은 것은 평원의 모든 성읍과
길르앗 온 땅과 바산의 온 땅
곧 옥의 나라 바산의 성읍 살르가와
에드레이까지이니라
[신명기 3 : 10]

이스라엘 민족은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여 바산의 성읍을 멸망시키고 바산의 온 땅을 차지했다. 이 얼마나 훌륭한 트라우마 극복기인가?

극복하다!


물론, "이 이스라엘 민족의 트라우마는 출애굽 1세대에게만 해당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 출애굽 2세대에게는 트라우마까지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이라면 왜 자신들이 광야에서 떠도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자신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끄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분이 누구신지 등은 중요하게 교육이 되지 않았겠는가? 특히 40년의 광야생활을 해야 했던 민족에게 있어서 광야생활 이후에 정착할 약속의 땅에 대한 갈망은 굉장히 컸을 것이다. 그러기에 출애굽 2세대들이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나안 땅 정탐꾼의 보고내용은 매우 중요한 역사로 반드시 교육되어야 하는 항목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선배들이 극복하지 못한 큰 장애물을 마주하게 되는 후배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극복하고 말겠어!"라고 열정 가득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선배들이 하지 못한 것을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전쟁은 단순한 극복하기 쉬운 장애물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삶'과 '죽음'의 거리가 종이 한 장 차이와 같이 매우 근접하게 가까운 상황이 펼쳐지는 살벌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바로 전쟁인 것이다. 없던 트라우마도 생기는 곳이 바로 전쟁터인 것이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상황이 펼쳐졌겠는가?

전쟁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트라우마와도 같은 이들과 용감하게 싸워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신명기 3 : 21~22]

이스라엘 민족이 헤스본의 왕 시혼, 바산의 왕 옥을 상대했을 때 전투는 이스라엘 민족이 치렀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을 똑똑히 보고 기억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 비결은 바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이다.

겉모습만 보면 광야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9m 두께의 성벽과 45cm 두께의 이중문으로 둘러싸인 거인족이 군림하고 있는 60개 이상의 성읍을 함락시켰다. 이는 마치 대한민국에서 은퇴한 축구선수들이 만든 조기축구팀이 월드컵에 나가서 유럽과 남미의 강팀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격이다. 전 세계는 이변의 월드컵이라며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이변의 주인공들은 알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우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도 자신들의 군사력이 뛰어나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 전투를 이끄셨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트라우마를 극복한 비결이다.

조기축구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마귀는 어떻게든 그 삶에 두려움과 의심을 불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삶에 다양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트라우마 극복기를 참고하여 우리의 삶의 전투에서 승리로 이끄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멋지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크리스천이 되길 소망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북으로 가라!"라는 명령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한창 광야생활을 해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객기로 무작정 전투를 치르러 진격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욕심대로 무작정 트라우마 극복하겠다고 객기 부리며 하나님이 왜 우리 인생의 선봉장에서 싸워주시지 않냐며 불평을 하지 말자.

신명기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직전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모세의 설교 3편을 모아놓은 성경이다.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직전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먼저 듣게 하신 설교를 보면 다투지 말고 그저 지나쳐야 하는 땅과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땅에 대한 내용이었다. 특히, 정복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마음속에 새겨야 할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명심해야 하는 말씀이다. 우리네 삶에서 우리가 그저 지나쳐야 하는 영역과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며 정복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잘 분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멋진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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