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80세에 사명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의 리더로서 출애굽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했다. 즉, 광야생활 막바지 모세의 나이는 약 120세였을 것이다. 이 시점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헤스본과 바산을 정복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 직전의 요단강 앞에 서있는 늙은 할아버지 모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 늙은 이스라엘 민족의 리더가 하나님께 간절한 소망을 아뢰고 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신명기 3 : 25]

이것이 약 120세 노인의 간절한 소망이다. 눈앞에 있는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명기 3 : 26]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다. 이는 단순한 진노가 아니라, 모세의 말을 듣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을 보면 엄청나게 화가 나신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다시는 하나님께 말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계시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모세가 이런 소망을 품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자.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남자아이들의 죽음의 강이었던 나일강에서 건져내 졌으며, 애굽 병사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가 갈라져 죽음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생명의 길을 통해 출애굽을 했다. 모세에게 있어서 눈앞에 펼쳐진 강을 보며 이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았겠는가? 강에서 건져내어 지고, 바다를 가르며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모세의 입장에서는 눈앞의 요단강 또한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였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넘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세의 요단강을 건너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매몰차고 단호하게 모세의 소망을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향한 정탐꾼 12명을 보냈다. 이 중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민수기 14장 30절의 말씀을 하셨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수기 14 : 30]

그리고 민수기 20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데스에서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자 회막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 이에 모세가 명령을 하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2번 쳤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서 민수기 20장 12절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민수기 20 : 12]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이미 2차례나 선포를 하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하나님께 아뢴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서 단호하게 다시는 이 얘기를 하나님께 하지 말라고 까지 말씀하신 것이다.
120살 산전수전 다 겪은 모세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인데 하나님께서 너무 매정하게 거절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가? 80살에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온 모세의 간절한 소망을 매몰차게 거절하신 하나님이 너무 야속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 상황에 녹아져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보자. 우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정의'를 그대로 지키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이미 2번이나 불순종의 죄로 인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선포를 하셨기에, 선포하신 대로 '공의'의 하나님의 면모를 보여주셨다.
두 번째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은 '죄의 대가'였다. 광야 생활을 하며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죽고 2세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거룩하신 하나심께서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명확하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려주실 필요가 있지 않았겠는가? '죄'는 반드시 그 대가가 치러져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 : 23]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치러야 하는 '우리 죄의 삯'을 예수님께서 치러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모세는 자신이 저지른 불순종의 죄 한 가지와 이스라엘 민족의 죄 한 가지로 인한 대가로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모세는 민족적 죄의 대가도 본인이 치러야 하는 상황인데, 모세가 억울해 보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감정을 배제하고 이 상황을 DRY 하게 바라보면, 이것이 리더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이다.
법인 기업의 임원진은 등기이사와 비등기이사로 구분된다. 등기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된 자이며 법적으로 회사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다. 반면에 비등기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되지 않으며, 회사에 대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 즉, 회사차원에서의 죄가 드러나 단순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 등 누군가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등기이사가 그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죄의 대가를 치른 것처럼 말이다.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는 상황을 바라보는 출애굽 2세대 이스라엘 민족들을 생각해 보라. 불순종의 죄를 지었을 때 120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단호하게 거절되며 철저하게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죄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결심을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는 우리가 엄청난 노력을 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일방적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도 죄의 대가는 감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120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도 단호하게 거절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이 상황가운데 모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 3장 27절 말씀이다.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신명기 3 : 27]
모세는 요단강을 건널 수 없지만,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약속의 땅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물론, "약올리는겨?"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모세의 소망을 자세히 보면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과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는 것 두 가지 항목이 있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의 대가로 선포하신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하는 것은 바꿀 수 없지만,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는 소망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다. 즉, 죄의 대가를 치르는 와중에도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것이 120살 모세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단호한 태도와 죄의 대가를 치르는 와중에도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동일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루하루 승리하며 살아가자.
이스라엘 민족의 리더였던 120살의 모세 할아버지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 싶었지만 들어가지 못했던 모습은 대한민국을 이끈 리더였으나 말년에 대한민국 땅에 두 발을 내딛는 것만을 꿈꿔온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이 된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낸 멋진 리더였으나,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이후 하와이로 건너갔다. 그 이후 대한민국으로의 귀국이 거절당하면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귀국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은 하와이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때의 마지막 기도와 유언으로 묵상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굳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승만의 마지막 기도]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 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이승만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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