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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산상수훈

[산상수훈 묵상 - 030] 두 주인 - 2

Gospel Barista 2021. 6. 1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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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몬인 재물을 주인삼을 것인가, 선하신 하나님을 주인삼을 것인가. 이 중에서 우리는 옳은 결단을 해야 한다. 부자 청년과는 다르게 이 어려운 결단을 해낸 이가 있다. 바로 '삭개오' 이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Jesus entered Jericho and was passing through.
A man was there by the name of Zacchaeus;
he was a chief tax collector and was wealthy.
He wanted to see who Jesus was,
but being a short man he could not,
because of the crowd.
So he ran ahead and climbed a sycamore-fig tree
to see him, since Jesus was coming that way.
When Jesus reached the spot,
he looked up and said to him,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So he came down at once
and welcomed him gladly.

[누가복음 19 : 1~6]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였다. '세리장' 이라고 하니, 적당히 세금 걷는 자들의 리더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he was a chief tax collector' 이다. 'Chief' 라는 단어는 왠만한 리더에게는 붙이지 않고, CEO와 같이 최고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붙인다. 즉, 삭개오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국세청장 정도 되는 사람인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삭개오는 부자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삭개오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예수라는 자가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여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로 향했다. 다만,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있어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 그러자, 삭개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실 길 앞으로 달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돌무화과나무는 뽕나무이다. 이 나무는 열매가 많이 맺는 나무로, 가난한 자들의 식량으로 이용되는 나무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조합인가. 사람들의 세금을 걷는 세리들의 장(Chief)인 부자 삭개오가 가난한 자들의 식량인 열매를 맺는 나무에 올라간 것이다. 권위와 품격을 지켜야하는 세리장이 가난한 자들의 식량인 열매를 맺는 나무에 올라간 것이다. 이것은 삭개오의 삶을 정확하게 나타낸 장면이다. 가난한 자들의 등골을 빼먹던 세리장인 삭개오의 삶은, 가난한 자들의 식량을 공급해주는 나무를 짓밟고 올라간 모습과 동일한 것이다.

아마, 삭개오는 자신은 키가 작으니 사람들과 예수님은 자신을 보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이 보고싶은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 내려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예수님께서 그 앞을 지나가시다가, 그 앞에서 멈추시고 삭개오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부분을 영어 성경을 직역하면 이렇다.

"삭개오야. 즉시 내려와라.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집에 머물러야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면, 삭개오를 향해 즉시 내려오라고 하신다.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 자체가 삭개오의 삶 전체를 보여주는 장면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나무에서 내려오라는 것이 아니라, 삭개오가 누리고 있던,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올라섰던 그 자리에서 즉시 내려오라는 것이다.

삭개오는 이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단숨에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권위와 품격이 중요한 자가, 단번에 나무에서 내려와서 기쁘게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다. 더 나아가, 평소에 수많은 명령을 내리던 세리장이, 자신에게 내려오라고 명령하신 분을 기쁘게 영접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삭개오의 이름의 뜻에서 그 비밀을 찾아보자. 삭개오의 이름은 원어로 보면 '자카이오스' 로, '이스라엘인 삭개오' 라는 뜻 외에는 특별한 뜻은 없다. 특별한 뜻은 없지만, 삭개오는 이스라엘 민족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로마시대의 여리고성의 세리장, 즉, 국세청장을 맡고 있었다.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들의 장으로써 말이다. 삭개오의 이름의 어원을 더 찾아들어가보면, 히브리어 '작카이' 로, '순결한' 이라는 뜻이며, 구약성경의 '삭개' 라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삭개는 바벨론 포로시기에,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과 남유다로 귀환한 인물이다. 즉,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고 그 성벽을 다시 세우는 자들의 조상의 이름인 것이다.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에스라 2 : 1]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에스라 2 : 9]


이를 정리해보면, 삭개오의 이름은 '무너진 주님의 전을 다시 일으키는 순결한 이스라엘 민족' 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삭개오의 정체성은 '삭개오' 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삭개오의 삶은 '삭개오' 로써의 삶이 아닌, 여리고의 세리장으로써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삭개오가 자신의 이름의 뜻을 몰랐을 리가 없다. 이런 삭개오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신의 정체성과 동떨어진 삶, 즉, 창조된 목적대로 살지 않고있는 삭개오의 공허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삭개오의 귀에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이 들려온 것이다. 그리고 삭개오도 예수님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을 들었을 것이다. '삭개오' 로써 살아가야하는 삭개오에게 유대인의 왕인 예수님이 자신의 동네를 지나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삭개오는 이 유대인의 왕, 즉, 자신이 받들어야 하는 왕을 멀리서라도 보고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고,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줄 유대인의 왕을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하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것이다.

이런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숨은 삭개오를 예수님께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찾으시고, 부르셨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눈 앞에 멈추시고, 명확하게 삭개오를 지명하며 부르신 것이다. 그 순간 삭개오의 삶의 괴리감과 공허함이 채워져, 예수님의 명령대로 단숨에 나무에서 내려와 만왕의 왕을 기쁘게 영접한 것이다.

성경에서 이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다. 바로 '마태' 이다. 마태도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자마자 "나를 따르라." 이 한마디를 하셨고, 마태도 망설임 없이 예수님을 따라갔다. 어떻게 마태가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태복음 9 : 9~10]


마태도 세리로써, 국세청 직원정도 되는 관리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을 보면, 마태의 결단의 비밀을 알 수 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누가복음 5 : 27~29]


마태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레위' 이다. 레위는 제사장 직분을 이어나가야 하는 지파의 이름이다. 즉, 마태는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하는 자인데, 세리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태에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 라고 손을 내밀어 주신 것이다. 이에 대한 마태의 반응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창조된 목적대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태복음에 담아냈다. 삭개오와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삭개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예수님을 영접한 후의 모습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삭개오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기쁘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누가복음 19 : 7]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면,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욕하고 지적질을 한다. 삭개오의 결단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린 내용을 보면, "저(예수님)가 죄인(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라고 한다. 즉, 수군거림의 대상은 예수님과 삭개오 모두 해당된다. 이 수군거림에 우리가 위축된다면, 우리가 힘겹게 결단한 것이 물거품이 되버린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상의 반응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해주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요한복음 7 :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한복음 15 : 18]


예수님께서는 이미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 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자들' 이다. 이런 자들을 향해, 오히려 수군거리고 끝난 것이 기적일 것이다. 하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세상이 미워하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이 우리에게도 향하는 것이다. 이런것에 위축되지 말자. 예수님께서 희망의 말씀을 주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 : 33]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자.
삭개오는 이 수군거림 가운데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But Zacchaeus stood up and said to the Lord,
"
Look, Lord! Here and now
I give half of my possessions to the poor,
and if I have cheated anybody out of anything,
I will pay back four times the amount."

[누가복음 19 : 8]


수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삭개오는 일어서서 "Look, Lord!" 라고 외친다. 자신이 주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주님도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뭐라고 수군거리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자신과 예수님의 1:1 관계가 중요한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된 것이다.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Fix) 하는 삶!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봐주시기를 기대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 이것이 바로 삭개오가 보여준 우리를 미워하는 세상에 담대히 나아가는 첫 번째 스텝이다.

세리장 삭개오의 삶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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