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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산상수훈

[산상수훈 묵상 - 032] 걱정거리, 염려

Gospel Barista 2021. 6. 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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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어지는 말씀은, 위에서 이어오시던 마태복음 6장 말씀들의 결론 부분이다. 우선,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로하는 걱정거리들, 즉, 먹고사는 문제와 옷 입는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하신다. 무슨 옷을 입을지에 대한 문제는 자신을 꾸미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복을 보면, 단순히 꾸미는 문제라기 보다는, 이 또한 목숨이 달린 문제이다. 특히 망또와 같은 겉옷은 이들이 사막의 추운 밤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겉옷의 끝에는 옷 술이 달려있다. 이는 옷 주인의 능력, 권력, 힘 등을 상징한다.

다윗이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동굴에 숨었을 때,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이 때 다윗은 사울왕의 옷 술을 자른다. 다윗을 따르던 자들은 사울을 죽이고 싶었을텐데, 다윗의 이 행동에 만족을 한다. 옷 술을 자르는 것은 그 목숨을 끊은것과 동등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만진 예수님의 옷자락도 이 옷 술이다. 예수님 옷 술을 믿음으로 만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치료의 능력에 손만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목숨걸고 예수님께 나온 것이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옷을 입는 문제는 단순히 자신을 꾸미는 일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지키면서 자신의 권력과 힘을 나타내는 문제인 것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먹고사는 문제, 우리의 생명, 권력과 능력에 대해서 염려하는 모습을 바로잡아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 : 25~32]


창조순서를 보면 인간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셋팅 해놓으셨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죄를 지었고, 이로인해 걱정과 근심을 하게 되었다. 그 증거가 되는 말씀이 가인과 아벨이 태어나는 장면이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세기 4 : 1]


죄를 지은 이후에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었으나, 다행히 하나님께서 가인을 출산하게 하셨다. 이에 대한 아담의 반응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이다. 즉, 죄로 인해 우리가 걱정하게 된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해결하신 것이다.

이렇듯, 죄로 인해 그 전까지는 걱정거리가 아니었던 문제들이,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우 걱정스럽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문제가 되었다. 더욱이, 계속해서 인간들이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 창조된 목적은 잊고, 우리가 살아가는 문제 자체가 우리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세팅하신 자연들과 인간들을 비교하시면서 설명을 하신다.

공중의 새는 자신이 심고 거두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기르신다.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예쁘게 기르신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전성기 때의 왕인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이 꽃 보다 못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연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기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 닮아 지으셨고 훨씬 귀하게 여기시는 우리 인간을 이런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게 하겠냐고 질책하신다. 심지어 이런 인간들을 향해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명확하게 지적하신다. 이런 믿음이 적은 우리네 모습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 인간들은 자연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명소란 명소는 전 세계적으로 다 찾아다닌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나이아가라폭포, 스위스의 아름다운 융프라우, 아프리카의 대자연 등등... 우선, 이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셨음을 인지하고 있는 이들은 드물며, 자연의 힘이라고 표현을 한다. 하나님이 만드셨음을 고백하는 이들 중에서도, 그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똑바로 알자. 이 아름다운 대자연도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배경무대이다. 그리고, 이 대자연도 아름답게 꾸미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여겨주시는 대상이 바로 우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자연을 보고는 감탄하는데,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고 감탄을 하지 않는다. 감탄을 하지 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심지어 생명을 가볍게 여겨 낙태도 합법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이 없이,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엄청나게 염려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서 이런 걱정거리에 대해서 이미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고 한다.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하신 것들을 이미 다 알고 계시니, 이는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신다고 믿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드리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자. 이것이 예수님을 쫓는 자들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꽃. 이보다 더 아름다운 우리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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