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공교롭게 이들은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고자, 예수님께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한다. 요는 이렇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워야 한다. 일곱 형제 중 맏이가 자식 없이 죽어, 그 아내가 동생에게 시집가고, 동일하게 셋째에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고, 최후에 이 여자도 죽었다 치자. 이렇게 되면 부활 때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극단적이며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사례를 들어서 진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마귀의 수법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한 예로, 미국의 유명한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이 그와 반대편에 있는 자와 논쟁을 벌이던 내용이다. 낙태를 찬성하는 이는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사람은 어떻게 하냐?" 라고 극단적인 예의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낙태를 반대하는 이가 "낙태하는 이들 중 이런 예가 몇 % 될 것 같은가? 극단적인 극히 일 부분의 사례를 일반화하여 그 기준을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라며 반박했다. 낙태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두는 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인 것이다.
대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의 질문은 본질을 벗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간을 당한 사람이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낙태를 찬성할 것이 아니라 성범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방안 제시는 없이 이런 극히 일부의 극단적인 사례를 이용하여 낙태를 허용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이는 인권변호사로 평생을 일했다고 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짓밟는 짓을 하는 자들, 동물권 운운하며 육식 하지말고, 모피코트 입지 말라고 하면서도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낙태를 찬성하는 이들, 거룩하게 살아가자고 외치면서 담배피는 교인을 위해 흡연실을 만드는 교회, 그리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목사들까지... 현재를 살아가고있는 사두개인들이다.
예수님도 사두개인들 질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짚으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마태복음 22 : 29]
우리는 이런 사두개인들 속에서 진리를 붙잡고, 더 나아가 진리를 전파해야한다. 이들이 우리가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가? 당연히 우리의 힘만으로 혈과 육의 싸움을 하면 24시간 논쟁해도 저들의 생떼를 쓰는 억지 논리를 뿌리치기는 쉽지않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계신다.
바로 "성경!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이다. 우리는 이를 오해없이 온전히 믿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을 향해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하고 있다고 짚으신다. 우리는 신약 사복음서에서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을 쓰레기 취급한다. 하지만 이들은 성경을 오해한 이들인 것이다. 이것이 소름돋지 않는가? 우리도 성경을 오해한다면 이들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 끗 차이' 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씀묵상의 중요성이 느껴지는가? 사두개인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묵상하고 이를 우리의 삶에 녹여내야한다. 말씀묵상이 쉽지 않고 힘들 수 있지만, 우리는 이 한 끗 차이로 갈리는 두 갈래의 길에 서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예수께 속한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사두개인처럼 될 것인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해 오해하는 자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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