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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복음 다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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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88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기독교인이라면 주기도문은 수 백번, 아니, 수 천 번은 외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주기도문을 이렇게 주문처럼 외우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고, 주기도문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런 의문이 들정도의 기독교인이라면, 주기도문 대부분의 내용은 그래도 쉽게 이해를 한다. 바로 이 부분만 제외하고 말이다.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마태복음 6 : 12]이 부분에서 심한 충격과 함께 멘붕(?)이 온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죄 사함'의 문제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행위'에 달려있다는 '조건부 구원(?)'으로 ..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사람들

누가복음 2장에 '안나'라는 여자 선지자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가 많은 과부인데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한다. 이 여선지자 '안나'의 행적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누가복음 2장 38절]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이 계셨을 시기의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어땠을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율법교사들이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며 목이 곧은 백성의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는 비둘기를 파는 등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어있었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 제자들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어있다.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장 50절] 군사들을 대동해서 분위기를 압도하며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쳤기에 제자들 입장에서는 공포에 휩싸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네 모습은 어떨까? 이런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지는 않을까? '도망친다'라고 표현하니 교회를 떠나서 세상사람들처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것 자체가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말씀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는 것도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

자기를 부인하고

마가복음 8장 34절에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명기되어 있다.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34절] 그 가장 첫 번째 단계가 '자기를 부인하고'이다. 우리 삶에 이것을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가정은 내가 일군 가정이 아닌, 하나님께서 일궈주신 가정이다. 각자가 일하는 일터는 내가 구한 일터가 아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곳이다. 이런 관점이 없으니, 그저 삶에서 "나" 또는 "내가" 를 앞세우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자기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자기 삶에 간섭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왕국에 침범하는 '적'으..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의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마가복음 1장 37절]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각종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픈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사람들을 가르치셨기에 소문이 퍼지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을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기 바쁘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예'자도 생각나게 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회 안에는 각종 문제..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된 집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점들을 강해게 질타하신다. 그 마무리 멘트가 너무나 두렵게 다가온다.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태복음 23 : 38]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7장 24절 말씀과 같이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 : 24]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집은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집의 모습은 어떤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을까? 아니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된 집과 같을까? 마지막 때에..

교회에 앉아있다고 다 성도가 아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진짜 교회에 앉아있기만 하면 모두가 다 성도일까?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17장 24절]마태복음 17장 24절에 보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 성전세를 요구한 세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분명 성전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우리는 성도 또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세리 출신 마태는 이들을 '세리'라고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걷는 세금의 금액으로 표현했다. 정확하게 '반 세겔 받는 자들'이라고 말이다. 이는 마태가 성전에 오는 사람들을 '반 세겔'의 가치로 보는 이들의 심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모..

레위기의 화목제로 바라본 마태복음의 칠병이어 기적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외에도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이 칠병이어의 기적을 레위기의 제사법 중 화목제의 관점으로 묵상해보고자 한다. 우선, 칠병이어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

예수님이 따라간 사람

성경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수많은 병고침을 받은 자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하지만 특이하게 예수님이 따라간 사람이 있다.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예수님께서 따라가셨을까?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마태복음 9장 18~19절]자신의 죽은 딸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한 관리였다. 과연 이 관리는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길래 예수님께서 따라가신 것일까? 이 당시 시체는 굉장히 부정한 존재였다. 이를 손으로 ..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신 예수님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쓰여진 성경이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장면들이 많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장면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태복음 8장 2~3절]유대인 입장에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면 부정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부정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가면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정한 자가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지를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본 자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4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행적과 함께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귀신들이 더 정확하게 알아보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태복음 3장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태복음 3장 14절] 예수님의 정체를 알았다면 세례 요한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예배드리러 가는 모습이 과연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일까? 예배드리고 난 후 왕되신 하나님을 만난 기쁨의 ..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다. 그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태복음 2 : 2]우리는 이들을 동방에서 온 '박사'로 표현한다. 즉, 박사와 같이 공부를 많이 한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이 태어나시자마자 경배하러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별'을 계속해서 관찰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이고, 그때 하나님께서 별을 통해서 징조를 알려주실 것을 흔들림 없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얼마나 믿고 기다리고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마지막 때의 징조를 미리 예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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