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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복음 다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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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360

예수님! 당신의 제자들좀 혼내주세요!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신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큰 소리로 찬양했다.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누가복음 19 : 37~38]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그 무리 속에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혼내달라고 얘기한다. 제자들이 있는 힘껏 찬양하고 있었기에, 이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을 것이다.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누가복음 19 : 39] 논리적으로 이 상황을..

베드로의 실력

'베드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 어부 - 1등 제자 - 다혈질 - 예수님 3번 부인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 사탄아 물러가라 대체로 지적이고 날카로운 설교와는 거리감이 있다. 예수님을 열심으로 따르지만, 당시의 성경인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은 1도 없을 것 같은 '열정적인 순박한 뇌의 소유자' 정도의 이미지 이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의 베드로의 설교내용은 4복음서의 이미지와는 180도, 아니, 540도 다르다. 성령세례를 받은 이들이 방언을 하자 사람들이 술취했다고 수군거리자 명확하게 반박한다.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2 : 15] "아침 9시이니 너희 생각처럼 낯술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성경의 잘못된 인용 - 사회주의 &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평등을 외치며 '복지' 타령을 한다. 그러면서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롤 모델로 삼아 벤치마킹을 열심히 한다. 실제 북유럽의 국가들은 복지를 유지하기위해 엄청난 세금을 걷어들이고 있으며, 이로인해 국민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 총리가 국제회의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대표입니다”라 소개받았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다른 나라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지도 않네요." 이것이 복지국가의 총리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믿겨지는가? 그렇게 평등을 외치며 복지를 추구했을 때의 모습은 사회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향과는 사뭇 다르다. 다만, 이런 자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바로 사도행전 2장 4..

헤롯표 단두대

마태복음 14장은 세례 요한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헤롯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 이유는 헤롯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으로 환생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14 : 1~2] 세례 요한은 헤롯이 아내로 삼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 에 요청에 의해 살해되었다. 헤로디아의 딸이 헤롯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기쁘게하니, 그가 그 딸에게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고 한다. 이에 그 딸은 엄마인 헤로디아의 지시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이로인해 세례 요한은 처형되었고, 그의 제자들이 이..

에스겔서의 죄악 vs 대한민국의 죄악 [우상숭배]

에스겔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죄악이 명기되어 있다. 공교롭게 에스겔서에 명기되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대한민국의 죄악이 소름돋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를 상세하게 비교해보고자 한다. 그 세 번째 주제는 바로 '우상숭배' 이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대로 응답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

물에 빠진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배타고 이동하라고 하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해가 저물어 배는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멀어진 상태이며, 바람까지 거슬리도록 불어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예수님께서 밤 사경에 바다위로 걸어오셨다. 제자들은 유령이라 하며 놀랐으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신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14 : 27] 이 때, 베드로는 진짜 예수님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예수님인것 같은데 확신이 필요했는지, 예수님께 한가지 제안을 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마태복음 14 : 28] 예수님께서 이 제안에 대하여 간결하고 단호하게 대답하신다. 오라 하..

거룩을 회복할 때의 히스기야의 명령

히스기야는 '여호사밧, 요시아' 와 함께 3대 현군으로 여겨지는 남유다의 13대 왕이다. 북이스라엘 패망과 앗수르의 남하정책에 맞서야하는 위기정국을 신앙으로 헤쳐나갔다. 신앙을 바로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거룩' 의 회복이다. 그렇다면 '거룩' 을 회복하기 위한 첫 단계는 무엇일까? 예배? 말씀묵상? 기도? 회개? 찬양? 모두 맞는 이야기 이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게 없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거룩' 의 회복을 위해 어떤 명령을 내렸을까?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역대하 29 : 11] 히스기야의 명령은 '게으르지 말라' 이다. 즉, 히스기야는 '게으르지 않아야 거룩해질 수 있다' 라고 생각한..

에스겔서의 죄악 vs 대한민국의 죄악 [평화 타령]

에스겔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죄악이 명기되어 있다. 공교롭게 에스겔서에 명기되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대한민국의 죄악이 소름돋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를 상세하게 비교해보고자 한다. 그 두 번째 주제는 바로 '평화 타령' 이다.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에스겔 13 : 10]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13 : 16]평강이 없는데 평강이 있다고 한다. 즉, 평화가 없는데 평화가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평화가 있을까? 북한정권 수립되고 북한의 ..

베드로가 잡아올린 물고기 153마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이후 베드로가 동료 제자들과 고기를 잡으러 갔으나, 그 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더니, 이들이 그물 가득 물고기를 잡아올렸다. 그 물고기의 수를 세어보니 153마리였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한복음 21 : 11] 이 장면은 어느정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알게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153' 이라는 숫자를 인용하여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이나 교육의 이름에 '153' 을 붙이곤 한다. 심지어 모나미 볼펜에도 '153' 이라는 숫자가 박혀있다. 이는 15원에 판매하는 3번 째 볼펜이라는 의미이다. 하..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자

오늘날 살아가는 이들은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 '정보의 홍수' 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들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해야한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모두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즐겨보는 유튜버의 의견을 따르고, 누군가는 자신이 즐겨듣는 설교를 하는 목사의 의견을 따르기도 한다. 특정 교수의 의견을 따르기도 하고, 언론이 이끄는대로 순수히 따라가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런 상황 가운데 어떻게 판단하라고 할까?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12 : 57] 성경은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라' 고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누구 목사님이 그랬어!"..

다윗이 강성해진 이유

다윗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영웅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스라엘의 2대 왕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인물이다. 괜히 예수님을 '다윗의 씨' 라고 표현하겠는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다윗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다윗을 향한 접근법은 대부분 결과론적이다. "다윗처럼 찬양할거야!" "다윗과 같은 리더가 될거야!"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될거야!" 정작 다윗이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낼 수 있었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다윗의 삶의 비결이 다음 말씀에 정확하게 녹아들어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역대상 11 : 9] 이 말씀을 보고 "나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으니 강성해질 수 있다!" 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주어를 잘 살펴보자. 역대상..

어떤 상황속에서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희망을 품고 전진하자고 한다. 이 말을 인용하며 친구와 싸울 때에도 그렇게 하는게 '어떤 상황속에서도' 란다. 그러면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 생각하면 되는 것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희망을 품고 전진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친구와 싸울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희망을 품고 전진하라는게 아니고, 친구와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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